지난주 한국기원은 일주일 내내 제20회 LG배 통합예선전으로 붐볐다.

통합예선전은 90년대 후반 LG배와 삼성화재배에서 경쟁적으로 도입했다. 기존 32강 본선 토너먼트로 치르던 것을 오픈전으로 전환해 시드를 받지 못한 무명기사는 물론, 아마추어에게도 세계대회 문호를 개방한다는 취지였다.

자신감도 있던 시기였다. 당시 한국은 이창호 9단을 위시해서 조훈현 9단, 유창혁 9단, 서봉수 9단이 번갈아 세계대회 우승컵을 석권하던 때였다. ‘중국과 일본이 숫자는 많겠지만 어차피 우승컵은 한국 것’이라는 계산도 조금은 깔려있었을 것이다.

그로부터 20년. 강산이 두 번 변했을 시간이 흘렀지만 통합예선전은 큰 변화 없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최근 ‘세계대회 통합예선전이 정말 필요한가, 그리고 누구를 위한 통합예선전인가’라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이젠 굳이 통합예선전을 치를 필요가 없다, 통합예선을 폐지하자’고 주장하는 이들이 지적하는 문제점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과도한 일정상의 문제다.

이번 LG배 통합예선 결승에 오른 기사들은 4월 13일과 14일 치러진 1회전을 시작으로 18일 결승전까지 5일 연속 대국을 치렀다. LG배의 제한시간은 각자 3시간. 오전 10시에 시작된 바둑은 보통 오후 6시가 돼서야 끝난다. 하루를 온전히 바쳐야 하는 부담되는 일정이다.

이것을 본선에 오르기 위해서는 휴식 없이 5일을 견뎌야 한다. 그런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해야 겨우 본선 티켓을 확보하는 것이다. 참고로 LG배 본선 32강전부터는 하루 대국하면 다음 날 하루는 무조건 쉬는 것으로 되어 있다.

삼성화재배 통합예선이라고 다르지 않다. 그나마 제한시간이 2시간이라는 점이 조금 다행일까, 휴식 없이 기사를 배려하지 않는 일정은 LG배와 별반 다를 게 없다.

그렇다면 중국은 어떨까. 중국도 신생 세계기전인 몽백합배와 백령배를 삼성화재배나 LG배처럼 오픈전으로 치른다. 일정도 한국과 비슷하다. 하지만 한국과는 반대로 중국의 오픈전은 일리가 있다는 말을 듣는다.

왜 그런가. 몽백합배나 백령배는 우리처럼 본선을 32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64강전으로 시작한다. 때문에 본선 티켓 숫자가 많다. 참가 기사 수도 많지만, 기본적으로 본선 티켓 숫자가 많기 때문에 대략 세 번 정도만 이기면 본선 진출이 가능하다. 체력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별 부담이 없는 일정인 것이다.

둘째는 경제적인 문제다.

이번 LG배 통합예선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 동안 치러졌다. 최종 결승까지 오른다고 치면 외국 기사의 경우 적게 잡아도 약 8일을 체류해야 한다. 왕복 비행기 표와 숙박은 물론 식비 역시 자신의 부담. 성적을 내는 일류기사라면 문제가 없겠지만, 20대 전후의 기사들에게 낯선 타국에서의 적지 않은 체류 비용은 당연히 부담될 것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통합예선전은 단 한 푼의 대국료도, 상금도 주어지지 않는다. 최후의 일인만이 겨우 본선 32강전 패자 상금 300~400만원을 확보할 따름이다. 하지만 그나마 본선에 오른 기사들은 사정이 낫다.

대회 마지막 날인 결승전에서 패한 기사는 수 백 만원의 체류 비용을 자신이 부담해야 한다. 물론, 5일 연속 심혈을 기울여 노력한 대가도 없다. 아무리 대회 참가가 자신의 선택이라고는 해도 이쯤 되면 바둑이 생업인 기사들에게 너무 박한 처사가 아닐까.

이런 사정은 한국에 원정 온 중국 기사들에게만 적용되는 문제가 아니다. 거꾸로 중국 통합예선전에 원정 간 한국 기사들에게도 똑같이 해당된다. 다만 중국은 통합예선 기간이 짧기 때문에 사정이 나은 편. 아이러니컬하게도 통합예선전 만큼은 한국이 후발주자인 중국 보다 상황이 나은 셈이다.

이렇듯 현 통합예선 시스템은 별도의 예산을 들이지 않고도 주최측은 일주일 가까이 홍보효과를 보는 셈이지만, 그 이면에는 이러한 기사들의 애환이 녹아있는 것이다.

세계대회 통합예선전의 부정적인 영향은 이뿐만이 아니다. 통합예선은 국내 바둑보급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LG배 통합예선 개막 직전 (재)한국기원은 이번 통합예선에 한국 207명, 중국 93명, 일본 13명, 대만 19명, 아마추어 8명 등 총 340명이 참가했다고 발표했다.

대회 전 한국 기사들의 숫자는 항상 압도적으로 많다. 주최국이니 당연하다. 그런데 대회가 3일차쯤 접어들게 되면 양상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올해의 경우 대회 셋째 날인 15일에 한국이 47명, 중국이 46명 살아남았고 일본은 전멸했다. 그리고 나흘째인 16일에는 대만이 모두 보따리를 싼 가운데 한국 19명, 중국 29명이 남는다. 마지막 결승전에는 한국 8명, 중국 16명.

한국이 중국 보다 2배 많은 상태에서 출발하지만 뒤로 갈수록 한국 기사들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기본적으로 중국에 비해 층이 엷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리고 이것이 매년 반복되는 중이다.

결국 최종 예선 통과자는 한국 5명, 중국 7명으로 마무리. 그나마 올해는 한국 기사들이 선전해서 사정이 나은 편이다. 2014년 열린 LG배 통합예선에서는 한국 5명에 중국은 무려 12명이 예선을 통과했다.

그리고 그쯤 되면 바둑 전문기자들도 곤혹스러워지기 시작한다. 너무 많이 지니까 나중에는 쓸 기사도 마땅치 않아진다. 어서 대회가 빨리 끝났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현장이 이럴진대 보는 팬들은 또 얼마나 답답할 것인가. 아무리 바둑이 좋은 게임이어도 자신이 응원하는 기사들이 자꾸 지면 흥미가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팬들에게 실망감만을 안겨주는 이런 패턴은 매년 똑같이 되풀이 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자, 그렇다면 해결책은 없는 것일까.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리 어려울 것도 없다. 과거의 방식으로 돌아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예전처럼 각국에 본선진출 티켓을 부여하고, 자국 내 경쟁을 거친 기사가 본선에 출전하면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은 주최국이니까 과반에 가까운 14장의 출전 티켓을 할당받고 중국은 9장, 일본은 7장, 대만도 2장을 부여한다. 본선 멤버가 누구냐는 어디까지나 각국을 대표하는 기원의 재량에 맡기면 될 일. 자국 내 예선을 치르던 랭킹대로 출전시키던 주최측은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경쟁이 치열한 한국과 중국은 자국 내 기사들끼리 예선을 벌이면 될 것이고, 세계대회 참가에 별 메리트를 느끼지 못하는 일본의 경우는 참가를 희망하는 기사들에게 본선 티켓을 나눠주면 될 일이다.

혹자는 이렇게 바꾸면 ‘상황이 불리해지니까 대회 방식을 바꾸는 셈이니 국제사회에 체면이 서지 않는 일’이라고 말하지만, 상황은 항상 바뀌는 것이고 나라마다 처한 현실은 다른 법. 더 나은 상황을 만들겠다는데 굳이 주저하거나 남의 눈치를 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본선 티켓을 가장 많이 가져가는 중국 기사들조차 현재의 국내 통합예선전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볼 정도라면 개선의 여지는 충분하다 할 것이다. 이젠 세계대회 통합예선전을 손 볼 시기가 됐다.

글/유경춘 바둑뉴스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