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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흑백광장] 언제 적 송아지들이 아직도...
2015/09/01(10:19)
글쓴이 |
조회: 7,392 | 꼬리말:8

언제 적 송아지들이 아직도…

1985년 태어난 박영훈 원성진 최철한을 묶어서 ‘송아지 3총사’라고들 불렀다. 이들 세 명은 입단하기 전부터 유명세를 타더니 프로가 된 후엔 펄펄 날았다. 국내를 거쳐 국제대회서도 셋의 비중은 매우 컸다. 셋의 라이벌 구도도 항상 화제가 됐다. 아무튼 이들을 빼면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10년 사이의 한국바둑 최고의 융성기를 설명할 수 없을 정도다.

‘송아지‘들이 그 시절 한국 바둑계를 쥐고 흔든 절대적 주연(主演)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앞에는 이창호가 꽤 오랜 기간 동안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운 채 버티고 있었고, 그 뒤를 또 한 명의 천재 이세돌이 이어받았기 때문이다. 송아지들의 뒤에도 강동윤 김지석이란 막강한 후배들이 출현했다. 송아지들보다 약간 후배인 윤준상 이영구 허영호 백홍석 홍성지 등도 출중한 재주를 떨쳐왔다.

83년생 이세돌에서 시작해 89년생 김지석 강동윤에 이르는 80년대 출생 기사들은 그들 스스로나 한국 바둑계로서나 참으로 복 받은 세대였다. 이렇게 뛰어난 동량들이 대거 쏟아져 나온 것은 75년생 이창호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어린 이창호의 눈부신 성취에 고무된 학부모들이 머리 좋은 자녀의 진로를 대거 바둑으로 잡은 덕분이었다. 송아지 3총사는 이들 이른바 ‘이창호 키드’들의 정 중앙에 자리 잡은 최정예 핵심 요원들이었다.

송아지 3총사의 만남은 입단을 위해 공부하던 코흘리개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셋 중 한국기원 연구생 ‘전입 1호’는 원성진이었다. 만 네 살 때 바둑돌을 처음 쥔 막내아들의 일취월장에 고무된 아버지의 인도 아래 원성진은 연구생으로 등록했다. 초등학교 2학년, 만 여덟 살 때였다. 몇 달 뒤 박영훈이 들어왔다. 둘은 성격도 취향도 기풍도 달랐지만 또래 친구로 쉽게 가까워진다. 같은 무렵 권갑룡 도장서 줄곧 공부하던 최철한은 입단을 눈앞에 둔 시점 처음 연구생 명부에 이름을 올렸다. 원성진이 입단 몇 달 전 권갑룡 도장에 나오기 시작하면서 원성진-최철한 간의 첫 조우도 이루어졌다.

박영훈은 95년 가을 연구생을 자퇴한다. 2년 반에 걸친 연구생 생활이 너무 온실 같은데다 기대만큼 성적이 오르지 않자 승부수를 띄운 것이다. 아마추어 바둑선수가 된 박영훈은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전국을 돌며 거친 야전(野戰)을 익히기 시작했다. 이 기간 전국대회 우승 회수가 7회에 이르렀고 , 97년엔 11세란 최연소 기록으로 전국아마십강전을 제패했다.

셋 중 가장 먼저 입단한 ‘송아지’는 최철한이었다. 97년 5월, 12세 2개월의 나이였는데 이는 한국바둑 역대 최연소 입단 4위 기록에 해당했다. 꼭 1년 후 원성진이 프로세계를 향한 코를 뚫었다. 박영훈은 20세기가 저물어가던 1999년 12월, 만 14세 8개월의 나이로 입단했다. 최철한은 프로세계에서 이미 三단, 원성진은 二단으로 활약 중이었다.

이 무렵 한국 바둑 판도는 이창호의 독주였다. 조훈현과 유창혁 등이 이창호의 천하 통일을 근근이 가로막던 시절이었다. 목진석 최명훈 윤성현 안조영 등이 꾸준히 정상을 두들겼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바둑계는 참신한 새 얼굴들의 등장에 한창 목말라 있었다. 바로 이 시기에 송아지 세 마리가 나타나 기성 판도를 휘젓기 시작했다.

셋 중 정상권 노크는 원성진이 가장 빨랐다. 99년 제3기 신예프로10걸전서 선배 강호들을 줄줄이 제치고 결승까지 올랐다. 목진석에게 우승을 내주긴 했지만 만 14세라곤 믿기 어려운 솜씨였다. 이듬해 새 천년에 접어들자 이번엔 최철한이 존재감을 과시했다. 제2회 농심배 한국대표로 뽑힌 데 이어 본선에서도 외국 대표들을 상대로 3연승하며 괴물의 탄생을 알렸다. 2001년엔 송아지들의 발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최철한이 또 농심배 대표로 나가 2승을 추가했고, 원성진은 11기 신인왕전 준우승패를 낚아 올렸다.

진짜 놀랄 일은 그 해 연말 발생했다. 박영훈이 타이틀을 획득한 것이다. 송아지 트리오 셋 중 가장 먼저였다. 제6기 천원전 결승서 16세 8개월의 나이로 윤성현을 따돌리고 우승했는데 당시로선 최연소 1위, 최저단 타이, 최단기 2위 등 각종 기록을 양산하는 특급 블록버스터에 해당했다.

‘송아지 3총사‘란 집단 애칭이 붙여진 것은 이 무렵이었다. 그들은 바둑계 최초의 아이돌 그룹(?) 격이었다. 그렇다고 송아지 3총사는 그들 스스로가 뜻을 모아 결성한 등록 브랜드는 아니었다. 나이 어린 꼬마기사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맹랑한 솜씨를 보이자 매스컴에서 2000년대 초반 붙여준 조어(造語)였다.


이들이 18세 되던 2003년 셋은 ‘천재 어린이 기사’의 이미지를 완전히 벗고 성인(成人) 거장의 초기 이미지를 갖추기 시작한다. 박영훈은 삼성화재배 준우승을, 원성진도 국제대회인 LG배 4강에 올랐다. 그 해 말 최철한은 첫 국내 타이틀(천원전)을 목에 건다. 그 이후 10여년에 걸친 송아지 3총사의 활약상은 우리가 기억하는 바 그대로다.

그런데 정작 놀라운 것은 그들 셋의 업적이 아니라 생명력이다. 올해 만 30세를 돌파한 그들의 위상이 과거 전성기와 비교해 거의 조금도 퇴색하지 않은 것이다. 박영훈은 310명을 헤아리는 국내 기사들 중 랭킹이 4위, 최철한은 6위다(이하 8월 30일 기준). “언제 적 송아지들인데…“하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셋 중 유일하게 군 입대를 거쳐 몇 달 전 제대한 원성진의 랭킹은 15위인데 서서히 옛 페이스를 되찾아가고 있다.

한 때는 “나이 마흔은 돼야 인생을 관조(觀照)하고 바둑도 원숙기를 맞는다”고들 했었다. 그러나 현대 바둑에서 황금기는 20세부터 28세 정도이고 절정 연령은 23~26세 무렵이란 게 각종 국내외대회에서 입증되고 있다. 요즘처럼 어린 기사들이 득세하는 시대에 30세를 넘긴 나이에도 정상의 일각 (박영훈 명인전, 최철한 맥심배)을 지킨다는 건 굉장한 일이다.


박영훈과 원성진은 현재 국제대회인 LG배 8강에 진출해 있다. 두 고비만 더 넘으면 우승권에 진입한다. 박영훈은 몽백합배에선 4강에 올라 세계 정상 재등정까지 넘보고 있다. 최철한은 LG배 16강에 이어 삼성화재배 통합 예선과 세상에서 가장 좁은 문이라는 농심배 예선을 잇달아 뚫고 태극마크를 달았다. 얼마 전엔 국수산맥 대회서도 중국 최정상권 강자들과 대등한 혈전을 펼쳤었다.


한국 랭킹 ‘베스트 10’에 든 기사 중 박영훈과 최철한보다 나이를 더 먹은 기사는 이세돌(32세·2위) 1명뿐이다. 20위권으로 넓혀 봐도 송아지 트리오보다 선배는 이세돌 조한승(33세·14위) 목진석(36세·19위) 3명에 불과하다. ‘한 살이라도 적은 나이가 최대 무기’라는 요즘 바둑계에서 송아지 트리오가 얼마나 내구성(耐久性) 강한 기사들인지 이 자료가 말해주고 있다.

중국랭킹을 들춰보아도 상위 10위까지 명단 중 한국 송아지 트리오 또래의 기사는 구리(古力·32세·8위) 1명뿐이고, 나머지 전원이 10대~20대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쿵제(孔杰·82년생), 후야오위(胡耀宇·82년생), 셰허(謝赫·84년생), 왕시(王檄·84년생) 등 동년배 기사들은 타이틀은커녕 각각 중국랭킹 37위, 23위, 28위, 11위로 밀려나 있다. 울타리가 다르긴 해도 한국 송아지들의 무시무시한 유통기한(?)을 확인하게 된다.

재미 과학자 배태일 박사 판 세계랭킹은 비공식 자료이긴 하지만 각국 기사들의 실력을 입체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유일한 데이터다. 이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바둑은 ‘나이 싸움’이란 게 더욱 실감난다. 이 순위표에 따르면 세계 최상위 20위권 중 10대가 4명, 20대가 11명이고 30대는 단 4명뿐이다. 30대 4명은 이세돌(3위) 박영훈(12위) 구리(13위), 최철한(15위)이다. 또 한 번 ‘한국 송아지‘들의 뜨거운 생명력에 감탄 안 할 수 없다(원성진은 군 복무 기간 동안 국제대국이 전무해 일단 41위로 밀려나 있다).

하지만 세상사 모든 일엔 양면이 있는 법이다. 송아지 트리오의 아교풀처럼 끈끈한 지구력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한편으론 뭔가 불안한 마음도 스물스물 일어난다. 30대 노장들이 아직도 전면에서 맹활약 중이란 것은 내일을 책임져 줄 새 얼굴들의 활약이 상대적으로 저조하다는 의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95후(後)’ 멤버 중 대표적인 얼굴이라면 나현(20), 변상일(18), 김명훈(18), 이동훈(17), 신민준(16), 신진서(15) 등이 꼽힌다. 이들이 송아지 삼총사와 비교해 어떤 활약을 보이고 있는지 두 그룹 간의 역대 기록 가상대결을 한 번 펼쳐보자.

◇송아지 3총사 대 95後 최고기록 대비표

송아지

95後

승자

입단

최철한

12세2개월

신진서

12세 4개월

송아지

신예전 결승진출

원성진 14세 2개월

(3회신예연승전·준우승)

변상일 16세 2개월

(1회 동아팜텍배·우승)

송아지

국내 우승

박영훈 16세 8개월

(6기 천원전)

이동훈 17세 0개월

(33기 바둑왕전)

송아지

세계 우승

박영훈 19세 3개월

(17회 후지쓰배)

-

-

농심배 대표

최철한 14세 7개월

(2회·3승)

이동훈 14세 5개월

(14회·0승)

95後

8월 국내랭킹(현)

4위 박영훈

7위 나현

송아지

배태일 세계랭킹(현)

12위 박영훈

20위 이동훈

송아지

역대 최고랭킹

1위 최철한(2009.11)

7위 나현/이동훈

송아지


위 항목 중 신예전 부문은 신진서가 합천 초청대회를 3연패했으나 소수의 초청전이어서 제외했다. 전체적으로 송아지 쪽이 95後 쪽을 능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0여년 전에 비해 기사 수가 거의 2배로 늘어났으니 난도(難度)가 더 높아졌다는 점도 감안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95후 팀은 입단 부문처럼 영재대회의 이점을 누린 항목에서조차도 밀렸다. 영재입단 대회는 15세가 넘은 강자들이 원천적으로 배제된 채 치르는 무대인데, 송아지 대표 최철한은 이런 혜택 없이도 영재들과의 입단속도 경쟁에서 앞섰다. 95후 팀은 농심배 대표 항목 한 곳에서만 간발의 차로 송아지 팀을 능가했다.


95후 팀은 떠오르는 영재 집단이므로 아직 절정기에 도달하지 않았다. 랭킹이나 타이틀 획득 수에서 송아지 멤버들을 머지않아 추월할 것이다. 하지만 이들 미래군의 약진 페이스가 과거의 스타그룹과 비교할 때 약간 느린 게 아닌가하는 의구심도 든다. 송아지들의 끝을 모를 투혼에 경의를 표하는 한편으로 신예 기사들의 분전 소식도 함께 기다린다. 우산 장수와 짚신 장수 아들을 함께 거느린 부모의 심정이 딱 이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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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8(오늘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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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강한남자01 2015/09/05(10:35)
꽃님이 아가씨 으견에 귀중한 한표 보템니다,,,,,,, 기자님 부탁 해요
강한남자01 2015/09/05(10:34)
아예 들소 3총사로 개명하지요 천하무적 들소 호랑이도 사자도 들소 한테는 고개 숙이져,,
북검일검 2015/09/04(14:51)
지금 만 30세면 인생의 꽃인데, 이젠 꽃등심 3총사라고 해야...
rbtjrfl 2015/09/04(12:57)
이홍렬기자님의 예리하고 철저한 분석 공감하고 즐기고 있습니다 송아지가 황소로 바뀌었는데
바둑과나이는 상관관계가 많지않음을 보여주는 황소3총사가 되길 바랍니다
레인코트 2015/09/03(15:08)
후배 송아지들이 분발해야겠군요. 잘 읽고 갑니다.
머깨비77 2015/09/03(09:19)
50후에도 늙은소 3총사로 꼭 한국바둑을 빛내주시길....
꽃님이아찌 2015/09/02(20:32)
이홍열기자님..송아지 3총사 아니 황소3총사의 활약상을 다시한번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주셔서 읽기도 편하고 ...더구나 95후 후배들과의 성적 비교도 여러 부문에 걸쳐 자세히 비교해주셔서 자~~알 읽고 갑니다 흥미로운 기사 발굴이군요..^^
lgc002330 2015/09/02(17:27)
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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