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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흑백광장] 프로타고니스트-안타고니스트
2015/07/01(11:35)
글쓴이 |
조회: 6,905 | 꼬리말:6

고대 그리스 연극의 주역배우를 일컫던 프로타고니스트(Protagonist)는 오늘날엔 영화, 소설 등 모든 픽션의 주인공을 의미하게 됐다. 주인공의 캐릭터를 돋보이고 영웅화하기 위해 동원되는 대립인물이 안타고니스트(Antagonist)다. 일종의 보색(補色)대비 개념이다. 빨강색은 청록, 노랑은 남색이 배경일 때 가장 도드라져 보인다. 드라마 서사 전개에 선악(善惡) 구도만큼 확실하게 독자(또는 관객)를 흡인하는 수단이 드물다는 점에서 이들 두 캐릭터가 극작품 안에서 떠맡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각종 고전(古典)에 등장하는 프로타고니스트-안타고니스트의 예는 부지기수로 많다. 흥부와 놀부, 춘향이와 변학도, 일지매와 김자점, 백설공주와 마귀할멈, 빌헬름 텔과 거슬러,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 오혜성과 마동탁… 또한 역사상 실존 인물로 현대에 와서 여러 형태로 극화된 시저와 부르터스, 코페르니쿠스와 프톨레마이오스, 이순신과 원균 같은 커플도 주역(主役)과 상대역의 역할이 분명하다. 심지어 권선징악 목적이 아닌 톰과 제리도 이 구도에서 벗어나있지 않다.

레미제라블에선 훗날 선악의 가치 기준이 약간씩 변하면서 장발장과 자베르 경감에게 기존 해석과 반대의 지위를 부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베니스의 상인‘에서 안타고니스트는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이지만 프로타고니스트는 좀 헷갈린다. 안토니오일까, 포오샤일까. 살 1파운드 계약서 밑에 “피 500CC 이내 출혈은 문제 삼지 않는다”는 조항을 깜빡하고 놓친 샤일록의 캐릭터가 다른 인물들에 비해 훨씬 선명하다. 이 작품 역시 샤일록이 프로타고니스트란 해석이 언젠가부터 꽤 큰 세력을 확보했다.

삼국지연의는 실제 역사적 사실(史實)을 상당부분 왜곡하면서까지 유비를 영웅화하고 조조를 격하시켰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당시 역사를 모두 유비의 관점과 입장에서 풀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반발심 때문에 삼국지연의의 프로타고니스트와 안타고니스트를 반대로 설정한 변종(?) 삼국지들이 다수 출간됐다. 하지만 어느 쪽을 주인공으로 설정했건 그 수십종의 삼국지들도 선악구도 문법을 그대로 추종하고 있는 것은 같다. ‘우리 편’을 설정하지 않은 드라마 작업은 그만큼 어려운 모양이다.

프로타고니스트와 안타고니스트는 소설, 연극, 영화 등 픽션에 동원되는 기법이므로 장르로 따지자면 문화 예술 쪽이다. 전달 통로인 문자(文字), 무대, 스크린 등이 모두 문화계 고유 도구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인공과 상대역을 대립시키는 이 수법이 문화계만의 ‘창작용 전유물’이 아니란 사실을 보여주는 또 다른 장르가 하나 있으니 바로 승부의 세계다. 스포츠나 바둑 등 승패 가르기가 목적인 승부 동네는 어떤 면에서 ‘프로타고니스트 마케팅‘이 문화계보다 더욱 어울리는 분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곰곰 생각해 보면 사실 크게 이상할 것도 없다. 문화 작품을 감상하려는 독자나 관람객의 대부분은 중립적 위치에서 출발하는데 비해 승부 관객은 게임 시작 전부터 이미 점찍은 선수가 있기 때문이다. ‘내 고향’, ‘내 모교’출신이 이겨야 하고, 국제전의 경우엔 ‘우리나라 선수’를 응원하기 위해 경기장을 찾는다. 영화, 연극, 소설 고객이 작가의 뜻에 따라 한 발씩 동화돼가는 반면 게임 관객은 처음부터 프로타고니스트와 안타고니스트가 결정된 상황에서 객석을 찾아간다는 얘기다.

라이벌 간의 대결에 특별히 더 많은 관객이 몰리는 것은 승부세계의 특질이 바로 이 같은 ‘대립구도’임을 선명하게 설명해 준다. 게임에 나서는 양쪽 선수가 절대 져선 안 될 라이벌 관계라면 그들은 양측 관객들로부터 프로타고니스트와 안타고니스트의 역할을 대등한 비율로 위임받은 것이다. 그들 사이에 얽히고설킨 숙적 관계를 최대한 강조하고 덧칠해 상품가치를 극대화시키는 프러모터가 유능한 흥행사다.

얼마 전 끝난 메이웨더와 파퀴야오의 프로복싱 경기에서 필자가 주목한 것은 천문학적 대전료보다는 메이웨더의 ‘자발적 악역’ 캐릭터였다. 메이웨더는 평소 자신의 캐릭터를 악역으로 설정, 틈만 나면 밉상스런 사건을 펼치며 이미지 관리(?)에 주력해왔다. 혼잡한 곳에서 지폐를 뿌려 아수라장을 만들기, 나이트클럽에서 여성들 폭행하기, 자신의 자녀를 셋이나 낳아준 동거녀를 마구 때려 석 달간 유치장 신세지기 등 악행은 끝이 없다. 웬만한 망나니 선수들은 이 같은 행동을 숨기는데 급급하지만 메이웨더는 오히려 자신의 흥행 가치를 높이는 수단으로 삼는다. 괴짜는 괴짜다.

바둑은 프로복싱과 여러 모로 닮았다. 대표적인 개인 종목이란 점이 그렇고, 유난히 내셔널리즘 색채가 강하다는 점이 그렇다. 지난 날 복싱이 그러했듯 바둑도 국제전이 펼쳐지면 곧바로 국가대결 분위기가 형성된다. 이세돌과 구리의 10번기 내내 두 사람은 양국의 운명을 담판 짓는 전권대사 같았다. 1대1 국제전의 경우 우리 선수는 국내에선 프로타고니스트, 상대국민 입장에서 볼 때는 안타고니스트다. 경기 장소를 바꿔도 역할은 똑같다. 예술이나 문화 쪽의 그것과는 이 점에서 차별화된다.

조훈현은 1989년 사실상의 첫 세계기전이었던 잉씨배서 우승하고 돌아와 훈장도 받고 카퍼레이드도 펼쳤다. 대한민국 바둑계 프로기사 중 이보다 더 확실하게 프로타고니스트로 대접받은 경우는 그 전에도 후에도 없었다. 반대로 이 대회를 통해 중국인의 우수성을 과시하려던 중국 입장에선 안타고니스트가 시나리오를 뒤엎은, 괘씸하기 그지없는 깽판이 돼버렸다. 결승서 최악의 연기력(?)을 보여준 녜웨이핑(聶衛平)은 그 대회 후 심장병이 크게 악화됐고, 시상식에 나온 잉창치 영감님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졌다.

국내 기사끼리의 대결 때 관객들이 ‘착한 주연’과 ‘악역 조연’을 결정하는 잣대는 다양하다. 평소 대국장 안팎에서 보여주는 매너와 이미지가 큰 몫을 맡는다. 한 때 기부천사로 유명했던 조한승에겐 지금도 많은 지지자가 몰린다. 한 수 두고 상대방을 노려보기, 큰 소리로 웃거나 중얼거리기, 돌 달그락거리기, 복기(復棋) 않고 퇴장하기 등은 팬과 동료기사들에 의해 안타고니스트 후보로 전락한다.

하지만 무조건 겸손하고 유순한 것이 환영받지는 않는다. 승부사는 기본적으로 싸움꾼이라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겐 승부세계에 어울리는 적당한 야성(野性)이 꼭 필요하다. “내가 실력 면에서 최고다. 우칭위안(吳淸源) 바둑은 놓아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히카루의 바둑에 나오는 바둑 귀신, 그거 별 것 아니더라”, “불리해서 이기겠다는 생각 없이 대충 두었는데 이겼네요.” 인기 스타 이세돌은 프로타고니스트가 꼭 갖춰야 할 덕목이 단순히 기량만이 아님을 잘 알고 있는 대표적 ‘흥행 배우’다.

바둑은 그러나 단순히 승패를 가리는 데 그치는 게임이 아니다. 무궁한 변화 속에서 기예(技藝)를 떨치고 겨루는 예술이기도 하다. 프로기사는 그래서 승부사와 예인(藝人)으로서의 평가를 동시에 받곤 한다. 중국 바둑계 입장에서 이창호는 2000년을 전후한 십수년 동안 중국 바둑계에서 타도 대상 1호였다. 대표적 안타고니스트였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초토화되는 과정에서 이창호가 보여준 기량과 인품에 감읍하고 진심으로 존경하기도 했다. 우칭위안이 일본이 광기(狂氣)에 휩싸였던 세계대전 와중에 17년에 걸친 10번기를 석권했을 때, 일본 바둑 팬들은 그의 눈부신 기예에 대한 외경심과 자국 바둑이 무너질 수 없다는 애국심 사이에서 상당한 혼란을 느껴야 했다. 이런 예들을 보면 프로타고니스트와 안타고니스트는 동전의 양면같은 관계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픽션의 ‘주인공과 악역’은 허구를 완성해 가는 과정에서 임의로 설정한 것이지만 승부에서의 그것은 아무 것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출발한다. 전자가 음모적, 사전(事前)적, 절차적이라면 후자는 무계획적, 결과적, 현실적 구조다. 픽션의 전유물인 줄 알았던 선악구도가 리얼리티 덩어리(?)인 승부세계에도 일부 적용된다는 건 흥미진진하다. 아무려나 앞으로 벌어질 국제 바둑대회에서 한국 기사들이 혈연적, 지역적 프로타고니스트에만 머물지 않고 ‘게임 시나리오’의 주인공 역할도 도맡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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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6(오늘 0개)

 

0 / 300자

등록
태극문주 2015/07/21(11:04)
유비는 좀 멍청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백성을 아끼는 마음이라도 있었지.
'삼국지연의'를 쓴 나관중이가 바보라서 그리 했겠나? 이런 사실을 사전에
알았기에 조조란 놈을 그리 쓴 것이지.
태극문주 2015/07/21(11:03)
삼국지연의 제대로 읽어는 보고 이런 글 썼는지 모리것구만.
조조라는 색희가 얼마나 개망나닌지 모르니 하는 소리여. 그눔이 죽인 양민이 몇이나
되는지 이 양반은 알기나 하는 걸까? 강소성 서주에서 무려 70만 여 명을 몰살한 놈이
바로 조조라는 인간말종이다. 그러니 뭘 좀 제대로 알기나 하고 글 쓰기 바란다.
네이티브앨터 2015/07/09(00:48)
이홍렬이 엄용수보다 바둑 잘두냐
분당진인 2015/07/05(17:45)
글에 깊이가 느껴집니다.대한민국에는 각분야에 우수한 분들이 많지요.그래서 대한민국은 미래가
있지요.좊은글 감사드립니다.
jaco105 2015/07/03(04:09)
예리한지적으로항상지적호감을유발시키는칼럼에한수를;;;
트라브존 2015/07/02(10:22)
단순히 내편 네편이 아니라 양측을 아울러 진정 추앙받는 승부사가 나왔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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