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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흑백광장] 한-중 바둑리그, ‘더블 플레이’는 사라져야
2015/06/10(10:28)
글쓴이 |
조회: 7,565 | 꼬리말:14

한국바둑리그는 출전 기사의 수준에서나 상금 규모로 보나 우리 바둑계를 대표하는 최고의 무대다. 하지만 5월 중순 치러진 4라운드(514~17)를 지켜본 팬들은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주전급 선수들이 일정이 겹친 중국 을조리그 출전을 택했고, 그 바람에 한국리그엔 베스트멤버를 구성하지 못한 팀이 속출했기 때문이었다. 12일부터 20일 사이 치러진 중국 을조리그에 나간 한국 바둑리거는 7명에 달했다. 2명씩 결장한 한국물가정보와 CJ E&M은 국내 2부리그 격인 퓨쳐스리거로 대체했으나 각각 23으로 패하며 분루를 삼켜야 했다.

 

다행히 올해는 중국 갑조리그와의 충돌 케이스는 아직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예년의 경우를 떠올리면 계속 아슬아슬한 마음이다. 중국 을조리그는 9일 동안 일제히 치르고 일정을 끝내지만 갑조는 올해 말까지 계속된다. 갑조리그 팀들과 계약한 한국기사는 박정환 김지석 이세돌 강동윤 최철한 이동훈 나현 등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스타 7명이다. 지금까지는 절묘하게 피해왔지만, 라운드를 거듭하며 팀 사정이 다급해지면 차출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런 현상이 올해 처음 불거진 것은 아니다. 똑같은 문제점이 매년 반복되고 있다. 한 중 양국에 중복된 적()을 지닌 최고레벨 기사들은 중국 원정을 갔다가 아침 비행기로 귀국 후 당일 밤 한국리그에 출전하는 곡예를 반복하기 일쑤였다. 몇 년 전엔 심지어 양국 바둑리그 일정이 중복되자 국내 경기가 생중계 아닌 녹화로 대체되는 해프닝까지 발생했다. 그것도 여의치 않았던 한 팀은 개막전에 주장이 빠진 채 출전하는 기록을 남겼다.

 

55의 팀 대결에서 주전급 선수 1명의 이탈이 가져오는 전력 손실은 엄청나게 크다. 팀의 패배로 이어지는 확률이 높아질 수밖에 없고, 팀을 운영하는 기업 입장에선 맥이 탁 풀려버린다. 최선의 라인업을 짤 수 없는 감독은 속이 타들어간다. 가장 상처를 받는 것은 남아서 싸우는 동료 선수들이다. 저들은 목돈 벌러 가는데 우리가 그 펑크 메워야 하나하는 상대적 박탈감까지 겹치면 팀웍도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만다. 단체 경기는 개인 종목과 처음부터 끝까지 다르다.

 

한국 특급 프로들의 중국리그 진출은 분명히 긍정적 요소도 가지고 있다. 규모 면에서 세계 최대를 자랑하는 중국 바둑 시장을 10년 넘게 왕래하면서 중국 바둑의 특질을 분석하고 대비하는데 큰 효과를 보았다는데 전문가들의 의견이 일치한다(물론 똑같은 논리로 중국의 소득도 따져봐야 할 것이다). 우리 기사들이 중국서 호성적을 올림으로써 국위를 많이 선양한 것도 사실이다. 또한 특A급 기사들의 중국 원정으로 생긴 빈자리를 하위권 기사들이 물려받아 성장 기회를 잡는 것도 긍정적인 측면임에 분명하다.

 

A급 기사들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프로기사들의 절정기는 생각보다 길지 않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을 때 재능을 최대한 발휘하는 것이 맞다. 세계적 인기를 누리는 스포츠 종목 스타들에 비하면 바둑 스타들의 소득은 비교도 안 되게 소박하다. 바둑 자체의 자존심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지금보다 월등히 높은 고소득 프로기사들이 앞으로 많이 배출돼야 한다. 그럼에도 현재 그들이 목돈을 쥘 수 있는 길은 매우 좁다.

 

하지만 단체 종목엔 한 가지 움직일 수 없는 불문율이 있다. 복수(複數)의 팀에 몸담을 수 없다는 원칙이다. 이 기본이 지켜지지 않으면 단체전이란 개념 자체가 무너진다. 특정 선수가 A리그와 B리그에서 모두 뛰는 경우는 세계 어떤 승부사회에서도 존재하지 않는다. 기성용이 주중에 스완지, 주말엔 서울FC선수로 뛰는 걸 상상할 수 있는가. 강정호의 피츠버그, 넥센 두 집 살림은 꿈도 꿀 수 없는 시나리오다. 문제는 이 지극히 간단한 규정을 벗어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엉거주춤한 자세나마 2중 계약(?)이 아직 통하고 있는 것이야 말로 심각한 한-중 바둑리그 더블 플레이의 뿌리다. 중국리그와 한국 기사들 간에 체결되는 계약 형태는 대개 수당(手當) 계약이다. 1국 당 승리했을 때 얼마, 패배 시 얼마, 대국 판수 몇 판 이상 등이 골격이다. 계약금 등은 없다. 국내 기사들과 한국 바둑리그 팀들 간에는? 이 때는 계약이라고 부를 만 한 과정조차 생략된다. 드래프트를 거쳐 팀이 배정되면 감독의 지시에 따라 주어진 판에 투입될 뿐이다. 법적 권리나 의무가 명시된 계약 절차를 거치지 않는다.

 

박정환에게 티브로드와 항저우, 이세돌 보고 신안천일염과 광시 중 하나를 택일(擇一)하라고 욱박지르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게 말 할 권한을 가진 사람도 없는데다 양자택일의 상황이라면 지금 조건에서는 상당수가 중국리그를 택할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서 용병(傭兵)으로 뛰는 한국기사들의 조건은 각자 다르지만, 1승에 우리 돈 2천만 원 가까이 받는 기사도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동급 레벨의 중국 기사들에 비해 2~3배에 이르는 액수다. 중국 프로기사들이 종종 역차별을 내세우며 볼 멘 소리를 할 정도로 한국 기사들은 중국 리그 관계자들로부터 우대를 받는다.

 

한국기원의 입장도 미묘하다. 중국에 진출하는 프로들과 일정을 놓고 갈등이 일자 2009년 말 이런 규정을 만들었다. 중국리그 출전 기사는 한국기원을 통해서만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한국기원은 중국리그에 출전하는 기사의 대국 스케줄을 조정하는 등 편의를 제공하고, 해당 기사는 그 대가로 상금 수입 총액의 10%를 한국기원에 납부한다. 현재의 한국기원으로선 소속 기사에 대한 편의 제공과 그 반대급부로 수입을 올리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조정할 위치에 있지 않은 셈이다. 2중 등록 문제와 관련해 한국기원이 말빨을 세우려면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한국리그의 한 시즌 전체 예산은 2015년의 경우 37억 원에 달한다. 우승 팀 상금만 따지면 중국 갑조리그와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하지만 중국리그가 승리수당 또는 팀 운영비 등 경비 대부분을 구단서 자체 지출하는 것과 달리 한국리그 팀들은 연간 3억원의 참가비를 내는 것으로 거의 모든 지출 요인들을 바둑리그 운영본부에 의존하는 구조다. 한국리그 팀에서 프로야구나 프로축구팀과 같은 역할을 떠올리면 난센스다. 프로시스템의 리그라기보다 출전비 내고 참가하는 대형 바둑대회라는 것이 정확한 현단계의 모습이다.

 

리그의 기본 단위인 팀들의 이 같은 운영구조야 말로 현행 바둑리그가 안고 있는 한계점들의 근원이다. 팀을 구단제로 전환해 자율운영 권한을 갖게 하면 될 텐데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우선 오너가 선뜻 오케이하지 않는다. 현존 바둑리그 참가 9개 팀 중 스포츠 구단 식의 선수 계약제 시스템을 도입할 경우 따르겠다는 팀 수가 과연 과반을 넘을까?

 

다른 건 몰라도 바둑 현대화만은 우리가 중국을 앞섰다고 자부해왔었다. 입단과 승단제도, 기전 운영, 대회 창설 등에서 실제 그랬다. 하지만 바둑리그는 한국이 중국에 뒤처진 대표적 아이템이다. 중국리그는 1999, 한국리그는 2003년 드림리그 시험 연도를 거쳐 2004년부터 정식 닻을 올렸다. 리그의 안정성과 인기도, 전체 볼륨 등은 양국 리그 연륜보다 몇 배 더 차이가 난다. 중국리그는 갑조 외에 을조 병조까지 있고 여자리그도 갑, 2개조를 운영하고 있으며 조별 승강(昇降)제도가 유럽 프로축구 뺨칠 정도로 확고하다. 구단 중심제 아래 소속 선수들이 우리처럼 매년 바뀌지 않고 지속된다는 점이 무엇보다 부럽다.

 

바둑리그만 뚝 떼어서 압도적 선진 시스템을 만든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바둑도 여느 문화처럼 그 나라의 인프라, 국민적 열기 등과 동반(同伴)해 움직이기 때문이다. 한국이 하루아침에 중국을 능가하는 바둑리그 시스템을 갖추려는 것은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격일지 모른다. 그렇긴 해도 중국의 2부리그에 치어 대한민국 최고 바둑제전이 파행을 면치 못하는 현재 상황은 부끄럽기 그지없다. 한국기원, 바둑TV, 바둑 팀을 거느린 기업들, 그리고 프로기사들도 한 발짝씩 물러서서 십 년 넘게 계속돼 온 이 파행 구조로부터 벗어날 방법을 함께 고민해야 할 시점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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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4(오늘 0개)

 

0 / 300자

등록
부귀8 2015/06/29(20:50)
한국바둑리그는 이야마유타 등등 일본 기사를 영입하라.
한라산철쭉 2015/06/28(16:14)
동감이됩니다
빠른수읽기 2015/06/25(01:32)
이런식으로 선수를 한국리그에 머무르게 압박한다면 한국바둑은 끝이다. 선수에게 한국리그를 강요하다니.. 돈을 마니 주던가...
포졸진가수 2015/06/23(18:31)
긍게 더블플레이를 업애면 어쩔까유
한우물만파자 2015/06/22(08:11)
과태님 한말씀올려셔야죠,,,파이팅
쌘돌파이팅 2015/06/19(21:23)
중국리그가 경기 환경도, 부담에서도, 경기의 질 면에서도 더 좋은데 돈에 프로가 움직이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요? 이세돌 프로가 쓴 책에도 중국리그가 훤씬 좋다고 합니다. 중국리그와 한국리그에서 선택은 저라도 중국리그를 택할겁니다. 이것을 잘못이라고 말한다면 한국리그의 질, 경기환경, 상금등 중국리그와 비슷하게는 해주고 해야하지 않을까요?
jikok 2015/06/17(13:49)
중국리그에 참가하는 것이 실력도, 경제적 면에서도 낫다고 보는데... 프로는 돈에 움직이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꼭 프로가 아니어도 까놓고 말해서 돈으로 움직이는 게 사실 아닌가... 나라망신이라고 무턱대고 막기만 하는 건 아니라고 보여집니다.
인생은공사중 2015/06/15(13:37)
이런곳에는 과태말라 댓글이 없네..죵하네
가베 2015/06/15(10:50)
서글프네요
레인코트 2015/06/15(03:52)
공감합니다
중산88 2015/06/13(18:47)
거의 모든 내용에 대해 동감합니다. 을조리그에 치여 한국리그가 개판 일보 전이라면 나라망신이기도 하고 한국리그의 망신이기도 하고 ... 돈 벌이에 나서는 것이 나쁠리 없지만 무언가 명확한 규정이 만들어져 시행되어야 할 것 같네요
rocd1 2015/06/11(21:01)
여지껏 아무도 말이없어 잘되가는 출전으로 생각했는데... 이런문제가 있었다면 한국기원은 미리 부작용을 알고 대비했아야한다..당연히 알고 있었겠지... 그러니 문제지...
데이빗리 2015/06/11(13:36)
이런 문제가 있는 것은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한국바둑리그가 좀더 좋은 방향으로 다른 스포츠처럼 구단제 운영으로 가는 것이 옳은 듯합니다. 이 점에 중지를 모았으면 좋겠습니다.
빈삼각김밥 2015/06/11(10:30)
좋은 글 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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