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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흑백광장] 아마추어가 뭘 어쨌다고?
2015/04/30(17:40)
글쓴이 |
조회: 14,849 | 꼬리말:4

아마추어가 뭘 어쨌다고?

“왜 그래. 아마추어같이?

개그 프로그램에서 인기 개그맨이 노상 입에 달고 살던 비아냥이다. 뭔가 서툴고 버벅대면 대놓고 ‘아마추어 수준’이라며 경멸한다. 깔끔하게 일을 처리하지 못한 정부는 ‘아마추어 내각’으로 내몰린다. “프로답다”는 소리 못 듣는 전문가들은 순식간에 ‘한심한 아마추어’로 전락한다. 이런 맹목적 이분법, 괜찮은 것일까.

 

아마추어: [명사] 예술이나 스포츠, 기술 따위를 취미로 삼아 즐겨 하는 사람. ‘비전문가’로 순화(네이버 국어사전).

이 헌법 조항(?)이 프로 아마를 가르는 기준을 명확하게 교통정리하고 있다. 잣대는 업무 수행 능력이나 수준이 아니다. 직업이냐, 취미냐가 프로 아마를 구분하는 도구다. 프로를 전업(專業), 아마는 업여(業餘)라고 쓰는 중국어 표기법은 절묘하게 정곡을 찌르고 있다.

 

어떤 일을 취미로 하는 사람이 그걸로 밥을 벌어먹는 사람들보다 더 잘하면 세상 뒤집어진다. 그런 일이 발생하면 학교나 회사부터 문을 닫아야 하고 사회 모든 조직이 마비되면서 엄청난 혼란이 찾아올 것이다. 프로가 아마보다 월등해야 제대로 굴러가는 조직이다. 하지만 ‘모든 프로는 언제나 아마추어보다 강하다’고 우겨서는 안 된다. 사고를 치는 ‘변종(變種) 아마추어’들이 종종 출현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LG배 기왕전서 아마추어가 본선행 티켓을 따냈다. 아마추어가 이 대회 본선에서 뛰려면 통합예선을 통과해야 한다. 국내외 프로들이 빽빽하게 막아선 정글에서 5연승을 해야 그게 가능하다. 안정기란 이름의 18세 청년이 전영규 주위안하오 랴오위안허 안조영 김승재 등 한-중 강자들을 차례로 꺾었다. 결승서 만난 김승재는 300명이 넘는 한국 프로기사들 중 랭킹이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막강한 실력파다.

 

LG배에 통합예선 제도가 도입된 것이 10년째인데 그 10년 간 이 관문을 뚫은 아마추어는 한 명도 없었다. 김종해(12) 김현찬(13), 유병용(14) 조인선 강지훈(이상 16) 등이 결승까지 오른 적이 있었지만 번번이 마지막 고비서 발목이 잡혔다. 이들 중 김종해를 제외한 나머지는 훗날 프로가 됐는데 아직 LG배 본선엔 올라보지 못했다.

 

바둑의 경우엔 입단대회라는 명확한 자격시험이 존재하며 이것이 프로와 아마를 가르는 잣대가 된다. 아무리 뛰어난 기력을 보유하고 있어도 입단대회를 통과하지 못하면 아마추어에 머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여기서도 예외가 존재했다. 20세기 중후반 일본 바둑계를 누비던 이른바 ‘아마 4천왕(天王)‘이 대표적 인물들이었다.

 

기쿠치(菊池康郞) 히라타(平田博則) 무라카미(村上文祥) 하라다(原田實)로 구성된 이들 ‘아마 4천왕’은 프로로 활동해도 충분한 실력을 갖추고도 평생을 아마추어 신분으로 지냈다. 히라다 같은 경우는 무려 84세 때도 젊은 아마 강자들을 따돌리고 일본 대표로 뽑혀 세계아마바둑선수권대회에 출전했다. 어느 사회에도 벼슬을 초개같이 여기고 초야에 묻혀 음풍(吟諷) 연월(煙月)하며 사는 재사들이 존재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LG배 아닌 다른 국제기전도 살펴보자. 아마추어 기사들의 국제 프로대회 출몰 기록이다.

 

<삼성화재배>

(96 1) 중국 리우쥔(劉鈞) 세계아마선수권 우승자 자격으로 본선 출전, 32(1회전 탈락)

(2009 14) 한국 이원영 입단 2개월 전 통합예선 통과해 본선 출전, 32(1회전 탈락)

(2010 15) 한국 민상연 통합예선 통과해 본선 출전, 32(1회전 탈락)

(2013 18) 에릭 루이 외국인 통합예선 통과해 본선 출전, 32(1회전 탈락)

(2014 19) 마이클 첸 외국인 통합예선 통과해 본선 출전, 32(1회전 탈락)

 

<바이링배>

(2012 1) 한국 김민호 통합예선 통과해 본선 출전, 64(1회전 탈락)

(2014 2) 중국 마텐팡 통합예선 통과해 본선 출전, 64(1회전 탈락)

 

<몽백합배>

(2013 1) 한국 오장욱 통합예선 통과 후 본선 1회전서 헤이자자 제압, 32(2회전 탈락)

(2013 1) 한국 최현재, 이창석, 정승현 통합예선 통과, 본선 64(1회전 탈락)

 

<비씨카드배>

(2009 1) 이지현 통합예선 통과 후 본선 64강전서 스웨 제압, 32(2회전 탈락),

정찬호 김정현 전준학 홍석의 통합예선 통과 후 본선 64(1회전 탈락)

(2010 2) 한태희 통합예선 통과 후 본선 64강전서 이창호 격침. 32(2회전 탈락), 나현 박영롱 이주형 최현재 64(1회전 탈락)

(2011 3) 홍무진 통합예선 통과 후 32(2회전 탈락), 김진휘 민상연 이호승 64(1회전 탈락)

(2012년 제4) 문병권 통합예선 통과 후 64(1회전 탈락)

 

아마 시절의 한태희가 이창호를, 이지현이 스웨를 꺾은 것은 괄목할 만 한 사건이었다. 이들은 당시 프로 지망생들이었고 결국 훗날 프로가 됐다. 그러나 대다수의 아마추어 고수들은 프로들과 겨루는 본선 무대서 단 1승을 따내는 것도 버거워했다(이번에 LG배 통합예선을 뚫은 안정기는 본선서도 승점을 따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프로 진입 직전의 아마 고수들 성적이 이러니 아직 바둑토양 자체가 미개한 서구(西歐) 아마추어들의 세계무대 성적은 별로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상당수 국제 기전들이 세계타이틀전의 구색을 갖추려는 의도로 머리칼 노랗고 눈동자 푸른 서구(西歐) 아마추어들에게 기회를 주었는데, 그것도 통합예선이 아니라 아예 본선 티켓을 할당했다.

 

LG배의 경우 훗날 한국기원에서 입단해 프로가 되는 알렉산더 디너스타인(러시아) 6(2001) , 2000년 유럽선수권 준우승자인 프란츠 디쿠트(독일) 9회 때 본선에 초대됐다. 둘 모두 1승도 못 따내고 짐을 쌌다.

 

네덜란드 태생으로 유럽바둑을 대표했던 롭반 자이스트라고 있다. 이 친구는 좋은 지역에서 태어난 덕분에(?) 동양증권배 춘란배 후지쓰배 등에 단골로 초대받았지만 1승도 올리지 못했다. 라자레프, 다네크, 그로넨, 로날드 슐렘퍼, 에드워드 로페즈 등도 마찬가지였다. 푸른 눈의 아마추어가 동양의 바둑 고수들을 꺾는다는 건 도무지 불가능했다.

 

하지만 여기에도 예외는 있었다. 아르헨티나 태생의 페르난도 아길라란 사나이. 그는 프로를 호선으로 꺾은 최초의 서양 아마추어로 바둑사에 기록되고 있다. 2001년 제1회 도요타덴소배에 참가한 아길라는 하세가와(長谷川直)와 양자위안(楊嘉源)을 연파하고 당당히 세계 8강에 진출했다. 하세가와는 일본 최고타이틀인 기성전 최고기사 결정전에 2번이나 올랐던 강타자이고, 대만서 건너온 양자위안도 신인왕전과 기성전 7단전 우승 경력 보유자다.

 

1959년생인 아길라는 요즘도 기회만 있으면 국제 대회에 빠짐없이 얼굴을 내민다. 본직은 건축 기사이며 바둑은 특기 내지는 취미다. 그야 말로 업여(業餘), 순수한 아마추어다. 연구생 수업을 받아본 적도, 프로기사를 사사한 적도 없으니 앞에 열거한 프로 연수 과정의 아마 고수들과는 DNA부터 다르다. 그는 자기 직업에 충실하면서 남는 시간에 바둑을 두었으며 열정 하나로 프로 고수들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눕혔다.

 

프로와 아마의 구별이 위험하거나 불공평한 이유는 각국의 제도 차이에서도 발견된다. 일본이 1979년부터 30여 년 동안 주도해온 세계아마바둑선수권대회란 게 있다. 이 대회 1회 우승자는 당시 27세로 중국의 사실상 1인자였던 녜웨이핑(聶衛平)이었다. 마샤오춘(馬曉春) 83 5회 대회 우승자다. 중국 프로제도가 85년에 도입된 탓에 거물들이 대놓고 세계 아마대회에 참가한 탓이다. 그런데도 중국의 실질적 프로 톱스타들은 당시 일본 아마추어 고수들을 압도적으로 제압하지는 못했다.

 

프로와 아마의 벽을 허물려는 노력은 스포츠의 세계에서도 가속도를 내고 있다. 이른바 오픈대회가 많아졌다. 아마추어들의 성전(聖典)으로 불리던 올림픽에선 참가 프로 선수들의 숫자가 계속 불어나는 추세다. 올림픽 아마추어리즘의 시조(始祖)인 쿠베르탕 남작이 살아있다면 할복자살을 시도했을지도 모를 정도로 둘 간의 경계선은 희미해졌다.

 

88년 아이스하키와 테니스가 처음 프로 스타들에게도 문호를 개방했다. 92년엔 프로농구 선수들이 올림픽 코트를 밟았다. 육상과 야구도 가세했고, 언제인가부터는 프로복서의 올림픽 입성 가능성까지 논의되기 시작했다. 이 문제를 가지고 가장 머리를 굴린 종목이 축구다. IOC(국제올림픽위원회) FIFA(국제축구연맹)은 논의 끝에 축구 후진국의 경우엔 무조건 프로 기용을 허용하는 방안을 80년대 시행하더니 92년부터 23세 이상 선수는 3명만 인정하는 것으로 규정을 바꿨다.

 

2000년대 초반 무렵만 해도 프로와 아마가 돌을 가려 호선(互先)으로 대결하는 광경은 꿈도 꾸지 못했었다. 실력 차이가 엄존하기도 했지만 프로의 권위가 그만큼 지엄했다. 이런 세태가 바뀌는 데는 계급장(신분)에 집착하기보다 실력으로 겨뤄야 한다는 시대적 분위기도 한 몫 했다. 요즘엔 프로기사가 아마추어에게 한 칼을 맞아도 예전처럼 수치스러워하지는 않는다. 아마추어 시절의 김춘호 홍맑은샘 김성진, 프로 입단을 앞둔 홍석의 등은 과거 일본 프로들을 참 많이도 울렸지만 나중엔 다반사(茶飯事)가 돼버렸다.

 

곰곰 생각해 보면 아마추어는 프로들에 비하면 오만팔천구백칠십배는 더 행복한 사람들이다. 기적(棋敵)에게 패하면 분한 마음에 혈압이 오르고 호흡이 가빠오긴 하지만, 그리고 강탈당한 만원권이 홀연 사라진 씨암탉처럼 아깝기 그지없지만 두 시간을 못 가 눈 녹듯 풀린다. 프로처럼 며칠 낮, 며칠 밤 동안 괴로워할 필요 없다. 목숨 걸고 싸울 일 없는 우리 아마추어는 이기는 판만 기억하면 세상이 낙원이다. ‘프로는 여행가이고, 아마추어는 관광객‘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프로를 신()으로, 아마추어를 ‘많이 부족한 인간’으로 가르는 습관적 2분법이 통용되는 분야는 낙후된 분야다. 적어도 바둑계에선 “왜 그래. 아마추어같이?”란 힐난은 사라진지 오래다. 앞으로 또 어떤 아마추어가 불쑥 튀어나와 지엄한 프로들을 상대로 사고(?)를 칠지 기다리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곧 시작될 제2회 몽백합배 통합예선에 우리 아마추어 8명이 베이징으로 떠난다). 그 즐거움마저 프로들에겐 해당이 없다. 이쯤 되면 세상을 지배하는 주인공은 오히려 아마추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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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오늘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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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Sycinkey 2016/03/30(06:05)
일본기원 관서기원의 입단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합니다.
건포도가슴 2015/05/07(21:28)
dma음 프로입단에 목을거는 아마츄어도 많다,,그들중 일부는 프로에 입단하지만 성적은 별무신통이다..그래도 팬서비스 차원에서 각종 세계기전에 아마추어 참가를 늘려야 한다,,팬들은 아마츄어가 이긴ㄴ걸 보고 열광하니깐
skqkdy 2015/05/06(20:39)
참 재미나게 읽었읍니다...
영고수 2015/05/05(08:49)
매우 공감할 수 있는 글입니다. 목숨 걸고 싸울 일 없는 '우리 아마추어는 이기는 판만 기억하면 세상이 낙원이다' 이 부분이 가장 좋아요. 저는 진 바둑은 복기도 안하고 이긴 바둑만 다시 보며 음미하죠. 푸핫!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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