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석의 발전사(3) 타부와 권위를 무너뜨린 화점과 세력

I. 바둑의 발전사는 곧 포석의 발전사

다소 추상적인 논의를 했다. 그 세 번째다.

왜 이런 논의가 필요한가.

바둑사 3천년을 이끌어온 수많은 이론과 실천에 질서를 주기 위해서다.

포석이 제대로 모습을 드러낸 건 불과 400년 전. 중국의 바둑은 포석이 없었다.

그러므로 16세기 말부터 20세기 중엽까지 일본 바둑의 발달사를 요약할 때, 그것은 포석의 요약과 같다.

바로 이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지난 논의를 요약하면서 포석의 발전사에 대한 폭넓은 시야를 갖도록 하자.

포석의 발전사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현상은 다음과 같다.

1) 중국의 비유적 이해는 도샤쿠의 19줄 발견 이후 일본에서는 점차 그 영향력이 사라져갔다.

2) 도샤쿠가 얻어낸 19줄 반상에서 소목과 외목은 점차 주류(主流)로 떠올랐다.

3) 소목과 외목이 떠오르기 위해서는 화점과 3三은 뒤로 밀려나야만 한다. 소목과 외목을 수면 위로 올려놓은 힘은 화점과 3三에는 배타적인 힘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4) 19세기 슈사쿠포석에서 도샤쿠의 19줄 발견은 그 정점을 이루었다. 그렇지만 정점에 오른 것은 곧 내리막길이었으며 실제로 소목은 그 발전성에 의문이 제기되었다. 슈와의 화점 강조는 근대에로 새 문을 열었다.

5) 1930년대 신포석 혁명은 화점에 대한 최대한의 지지 표명이었다.

6) 1970년대 중국식포석은 화점과 소목의 통합을 선언했는데, 그 선언은 지금까지 유효하다.

다소 복잡한 흐름인데, 그 뒤에 숨은 관념을 볼 것 같으면,

첫째. 사회적 질서의 관념체계는 사전배석제냐 자유포석제냐,

그 문제를 결정하는데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였으며,

소목과 외목, 화점과 3三의 선택에도 그 영향은 없지 않았다.

전쟁모형 또한 사회의 관념체계 중 일부인 것이다.

둘째. 반상의 논리는,

소목과 외목이 포석의 정점을 이루는 과정에서 사회의 관념체계와는 다른 독자적인 힘을 반상에 부여하였다.

오늘날 바둑에 대한 우리의 관념은 거의 모두 반상의 논리로부터 추론된 것이다.

그랬다.

반상에 투사된 사회적 질서의 관념체계가 있어 투사된 사회적 질서가 상징과 은유로 반상을 질서 짓는 단계가 있었다.

그리고 상징과 은유를 벗어나 반상의 논리가 반상을 질서 세우는 단계가 있었다.
이 단계는 질서를 위해 타부를 세우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타부도 질서도 하나의 관념. 언젠가는 무너질 관념.

그랬다. 숨겨진 타부와 그에 기반한 질서를 무너뜨려 새로운 질서를 일으키는 단계가 있었다. 그것이 1930년대 신포석 혁명이었다.

신포석.

오늘은 신포석을 주제로 삼아 그 전후 관계를 다루어 포석의 발전사를 마무리하겠다.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가를 밝히도록 하겠다.

II. 자유포석제에서의 타부, 화점과 3三

지금 보면 화점은 더할 나위 없이 반상을 잘 표현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일본에서 화점은 19세기 중반까지 거의 연구된 적이 없었다.

왜 그럴까. 그건 화점이 의식의 밑바닥에서 잠을 자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소목을 사용하기 위해서 화점은 의식의 밑바닥 깊숙이 가라앉아 있어야 했던 것이다. 3三 또한 그러했다.

반상의 논리로는 다음과 같이 이해된다. 우리의 일부인양 자연스럽게 대하는 반상. 그러나 이 반상은 그렇게 쉽게 우리의 일부가 되지 못했다.

처음 중국의 사전배석제를 철폐하고 자유포석제를 선택한 이들에게도 반상은 불안한 곳이었다. 사전배석제와 달리 동서남북 좌표도 주어지지 않았다.

불안을 어떻게 재우느냐? 그것이 문제가 되었다.

하나의 방법은 안정한 대상으로 몸을 피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반상의 대지은유에서 변의 1선에 가까운 곳이다. 소목과 외목은 그래서 선호되었다.

하지만 화점은 4선에 위치한다.

따라서 불안하다.

3三은 3선이지만 변에서 한 줄 더 먼 곳.

전쟁모형의 이치에서 보면 3三은 전투의 외곽지역이지 요처가 아니다. 관심 밖에 머물러야 한다.

III. 세력에서 신포석까지

세력의 실험 - 사카구치 센토쿠(坂口仙德 ? -1782)와 다이 센치(大仙知 1764-1837)

두 양반은 아버지와 아들이다. 뒷날 1930년대 신포석 시대에 세력을 주도했던 기타니가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토로한 바로 그 기사들이다.

1도(명시적인 세력의 실험)

요즘의 세력바둑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물론 이 당시에도 중앙에서 세력을 편 바둑도 없지 않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명시적으로 이론적으로 적극적으로 실험한 것. 그 점이 중요하다.

사실 어떠한 바둑도 5,60수를 넘어가면 다 비슷비슷해지는 것이 사실인데, 그 말을 달리 표현하면 5,60수 정도까지만 우리는 의도적인 창안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포석의 실험은 그래서 중요한 것이다.

이 바둑에서 하변 흑15 흑19를 주의하자. 한칸으로 중앙을 의도적으로 경영하겠다는 것은 쉽지 않은 착상이다.(1772년. 백 井上因碩 흑 坂口仙德)

화점의 실험 - 슈와(秀和 1820-1873)

소목의 견고함을 넘어서는 전국적인 안목에서의 발빠름.

그것이 화점이 등장한 이유였다.

뒤에 1930년대 신포석 시대 세력과 결부된 화점의 실험과는 다른 것이었다.

소목은 굳힘을 필요로 하지만 화점은 단 한 수로 귀를 점거한다.

남는 한 수는 변과 중앙으로 향하면 된다. 그것이 발빠름의 요체.

2도(백을 잡은 기사의 의지 - 화점의 실험)
당시의 바둑 스타일은 백8이 아니었다. A가 일반적이었다.

흑7은 당연한 한 수. 백에게 그 자리를 씌움 당하면 납작해진다.

물론 흑7이 아니라 협공하는 수도 둘 수 있다.

아니, 어딘들 못 두랴.

(1837년. 백 土屋秀和 흑 安井俊哲)

신포석 - 세력과 화점의 결합을 넘어서서

화점이 세력의 발전에 유리하고, 세력은 귀의 협소함을 넘어서는 것에서 얻어진다.

그러니 신포석의 의의는 앞서 논했던 세력과 화점의 실험을 다시 한 번 실험한 것이라 해도 되겠다.

그러나 신포석에서의 화점은 무엇보다 그 실험의 폭이 넓다는 점을 주시해야 한다.

3三도 포함하는 등, 일본 바둑 300년의 권위와 역사를 부정하는 태도가 현저했다는 점 등에서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혁명적인 사상과 철학을 바둑에 불어넣어 주었다.

3천년에의 도전이라고 불러도 전혀 과한 것이 아니었다.

3도(3연성과 세력의 결합)

3연성과 세력은 서로가 잘 맞는다.

세력을 펴기 위해서는 화점과 같이 4선 이상의 발전적인 돌 높이가 필요하기에 2연성도 세력에 잘 들어맞지 않나 하는데, 그렇지 않다.

이 바둑으로 설명하자.

흑7은 백이 그 자리를 씌우면 납작해지니까 피한 것.

백8은 거의 절대. 이를 10에 계속 씌우면 흑은 즉시 하변을 갈라친다. 가장 첫눈에 잡히는 것은 8의 자리일 것이다.(1933년. 백 木谷實 흑 長谷川 章)

백6~10을 볼 때 세력과 2연성은 서로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겠다.

2연성은 갈라침 당하는 즉시 세력에의 희망은 접어야 하는 것이다.

세력은 3연성 없이 성립되기 힘들고, 3연성은 세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실제로 세력바둑을 펴는 다께미야는 2연성은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오청원은 한 때 2연성을 그렇게나 애용했는데, 그 2연성을 세력으로 전환시킨 경우는 거의 없었다.

요컨대 기사 개인의 기풍 문제가 아니라, 3연성과 2연성은 비록 둘 다 화점을 기초로 하지만 전혀 다른 포석법이라 하겠다.

4도(신포석의 조망)

오청원이 2002년 쯤 직접 고른 신포석 시대의 기보다.

기하학적인 이치로 설명할 수 있을까. 아마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단순한 기하학적인 구도를 벗어난 것으로, 떨쳐버린 권위 뒤에는 부여잡을 것이라고는 자신밖에 없다는, 그런 말 정도만 할까.

진부한 표현 쓰겠다.

너무나 상징적인, 너무나 상징적인. 수직선이 착수의 중심축으로 인정되고 있다.

(1933년. 백 5단 吳淸源 흑 4단 小杉 丁)

5도(반상은 격자 - 중국과 일본을 넘어서서)

흑1, 3三. 일본 바둑 300년 타부의 부정.

흑3 화점. 일본과 중국의 숨겨진 권위의 부정.

흑5가 놓여질 때는 슈사이 명인의 안색에 노기가 드러날 정도였다.

하지만 흑5는 그 누구에게나 정말이지 한 번 두어보고 싶은 바로 그 자리였으리.

흑5 이후는 알파벳 순서로 진행되었는데, 흑P가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아쉬움이 남는 수였다. 요즘 같으면 흑a 이하 흑e의 수순을 선택할 것이다.

실로 정방형을 지향한 흑의 구상은 바둑이란 것이 격자무늬, 그 형상이 본 모습이란 것을 더할 나위 없이 곧게 표현한 착상이라 하겠다. 그것이 이 대국의 또 다른 값이다.

(1933년. 백 名人 本因坊 秀哉 흑 5단 吳淸源)

IV. 신포석의 열풍 지나, 화점과 소목의 화해

1930년대가 다 지나지 않아서 신포석의 열풍은 가라앉았다. 어찌 보면 너무나 빨리 가라앉은 것이 아닌가 할 정도인데,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급격하지만 너무나도 뚜렷하게 그 아이디어는 사람들에게 충분히 받아들여졌다. 모두가 다 이해했다.

충분히 이해했기에 신포석의 열풍은 가라앉은 것이었다.

물론 그 이후 모든 바둑이 신포석법으로 두어진 것은 아니었다.

실제는 이랬다. 1930년대 이전의 포석을 구(舊)포석이라 이름 붙일 것 같으면, 신구의 이해가 깊어져서 새로운 반상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화점과 소목이 함께 애용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외목의 사용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외목의 사용이 줄어든 것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3三과 화점이 애용되었으니 당연히 다른 착점은 빈도가 줄어든다. 외목 또한 예외가 아니다.

두 번째 이유는, 외목의 변 지향적인 측면을 화점이 대신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6도(소목과 화점이 마주하는 반상)

3선과 4선의 이해가 깊어졌다. 다양한 포석이 실험되었다.

그 하나가 이 구도.

한때의 유행이 되기도 했던 이 포석은, 참으로 상징적인 것이어서 저 포석을 대하면 그 누구나 조화를 느낀다. 한없이 넓혀지는 대지를 대하는 것만 같다. 소목이 마주하는 방향도 과거 300년에는 없었던 형식이다.

흑5 걸침에 대해 백A~백E는 오청원이 한 때 강조했던 포석법으로, 덤이 없을 때 백이 시도할 만한 형식으로 주목받았다.

V. 덤과 제한시간: 반상 밖의 요청

반상의 논리는 혁명을 맞이했다.

그러나 반상은 앞서 강조했듯이 사회적 관념을 뿌리칠 수 없는 세상.

그랬다. 이제 문제는 다시 반상 바깥에서 오기 시작했다.

중국의 사전배석제가 반상의 논리에서 온 것이 아니라 사회의 질서체계를 반상에 투사했듯이, 반상을 변화시키는 가장 강력한 요인 하나는 반상 밖 사회였다.

덤과 제한시간이 반상에 요청되었다.

과거 일본 바둑은 권위에 의해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취했다.

심지어 반상에서 해결하기 어렵지 않은 문제마저도 반상밖의 권위를 빌려 해결하는 묘미를 즐기기도 했다.

“따지 않고 석집”이라는 그 권위적인 문제해결도 100년이나 넘게 지켜져왔던 것이다.

바쿠후 체제가 무너진 19세기에 그 체제에 기댔던 4대 가문도 무너졌다.

그래서 세운 것이 일본기원.

당연히 일본기원은 점차 권위를 탈피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방향 하나는 가문이 아니라 개인간의 자유경쟁. 개인간의 승부는 가문의 권위를 떠난 것.

당연히 승부에서의 공정함이 요구되었다. 그것이 덤.

특히 신문사가 주도하는 신문기전은 승부의 공정성을 보장해야 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덤 4집 반. 본인방전이 시작될 때는 4집이었으나 곧 반집을 추가했다. 빅은 다시 한 판 두어야 하니까.

제한시간도 그랬다. 이는 덤보다 더욱 빨리 요구되었다.

심지어 통조림 대국까지 요구되었다. 권위가 살아있던 시대에 권리는 상수나 연장자가 쥐었다. 그러나 몇날 며칠 바둑을 진행하면 대국이 맑지 못하게 될 것은 불문가지.

당연히 요구된 것이, 대국자를 함께 여관에 투숙시켜 바깥과의 연계를 막는 것.

그것이 통조림 대국이었다.

덤과 제한시간의 규정은 반상에 거대한 변화를 몰고 왔다.

덤은 요구한다. 흑으로 하여금 대형정석을 피하도록 요구한다.

초반에 5집 , 6집 반의 덤 부담을 상회하는 변화를 흑은 이끌어내야만 바둑의 승부를 유리하게 할 수 있다.

백은 그 반대의 조건을 강조하고.

당연히 반상은 변한다. 그 대표적인 변화가 화점의 사용빈도.

화점은 소목과 달리 변화가 길지 않고 또 많지도 않아 흑으로서는 바람직한 수법이 된다.

짧아진 제한시간도 요구한다.

예를 들어 시간이 많이 주어지지 않으면 흑으로서는 공격적인 수법을 선호하게 된다.

천천히 이끌어서 종반에서 승부를 보자는 그런 방식은 흑에게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다. 이제는 과거에 비해서 훨씬 다양한 요인이 반상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더욱 활기를 얻게 된 것이 화점이었다.

이는 중국시포석의 등장과 시기를 같이 하는데, 급격하고 발빠른 돌의 흐름을 강조하는 것이 중국식 포석. 당연히 덤과 제한시간의 변화와도 잘 어울린다.

일본의 경우 1975년 중국식 포석이 유행한 이후 첫수를 화점에 둔 비율이 37%에서 62%로 올라갔다. 특히 높은 중국식 포석이 유행했는데 백의 유력한 대응책은 2연성 포석이었다.

그 역시 화점을 강조한 것.

7도(중국식 포석의 아이디어)

흑1 흑3 흑5가 중국식 포석이다.

1960년대 중반 중국의 바둑대표(陳助德)가 이 포석을 들고 나온 것이라 그리 이름 붙었다.

물론 이 글이 몇 번이나 강조했듯이 그 착상은 이미 17세기 초에 도샤쿠가 무던히도 실험했었다. 그리고 일본 바둑 소목의 역사에서 앞뒤로 오가면서 포석법을 발전시킨 것도 바로 그 착상이었다.

흑5는 A에 두기도 한다. 착안점은 백B의 침입을 억지하는 것. 침입하면 곧 흑5에 의해 공격당한 격이 된다. 백C 걸침도 백G까지를 상정하면 벌림이 좁아 불만인 것을 알겠다.

요컨대 화점과 소목, 그리고 19줄의 너비를 함께 고려한 포석법이라 하겠다.

8도(중국식 포석의 변형)

굳이 화점과 소목의 협력이 아니어도 된다.

고바야시(小林) 9단이 애용한 것이 바로 여기 하변의 포진.

굳힘보다 반상 전체의 안목에서 발빠르게 전개하는 착상을 강조하면 곧 중국식 포석과 다르지 않다는 인식이다.

우변에 흑 돌 오면 커다란 정방형 얻을 수 있다.

오청원은 1990년대 초부터 ‘21세기 포석’을 강조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반상의 어느 착점이든 그 착점이 의미가 있기 위해서는 전국적인 안목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이론은 주어지지 않고 있기에 아쉬움은 없지 않지만, 그래도 하나 뚜렷한 것은, 반상은 정체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랬다. 반상은 흘러왔다.

돌 하나 하나도 저 홀로 존재하지 않았다.

역사에서 바둑의 발전을 이끈 것은 언제나 반상이 정체되어 있지 않다는 바로 그 사실이었다.

관념은 다른 세상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넓은 관념이 되는 것.

바둑이라고 다른 세상은 아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