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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흑백광장] 바둑세계 와일드카드의 역사
2015/03/02(12:06)
글쓴이 |
조회: 8,063 | 꼬리말:4

바둑세계 와일드카드의 역사



와일드카드는 카드게임에서 ‘어느 경우에나 대용(代用)으로 쓸 수 있는 카드’ 또는 ‘여러 용도로 쓰이는 카드’의 의미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이것이 스포츠 쪽으로 확산되면서 출전자격을 얻지 못한 우수한 선수, 또는 자격시험(예선)을 면제시켜 주고라도 반드시 출전을 시키고 싶은 선수의 뜻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올림픽 축구에서 23세 이상 선수 3명,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의 4개 지구 2위 팀 등에게 주어지는 출전 혜택의 호칭 또한 모두 와일드카드이다.


바둑 동네에도 와일드카드가 존재한다. 국가대항 단체전인 농심배를 비롯해 삼성화재배, 정관장배, 비씨카드배, 지지옥션배 등에서 채택했거나 하고 있다. 며칠 뒤 3월 3일부터 중국 상하이에서 속개될 제16회 농심배 최종 3라운드에 맞춰 바둑계 와일드카드 역사를 정리해 봤다. 이번 농심배는 2라운드 종료 현재 일본 1명, 중국 3명, 한국 1명이 남아있는데, 한국의 유일한 생존자 김지석이 바로 와일드카드다.

국가대항 연승전인 농심배의 선수 구성은 한국 중국 일본이 저마다 다르다. 중국의 경우 총 5명 중 2명은 시드, 나머지 3명은 선발전으로 뽑는다. 전기 농심배에서 5연승 이상을 기록했거나 우승 결정전서 수훈을 세웠던 기사가 시드 대상에 든다. 선발전에는 상위 랭커 16명이 출전한 토너먼트를 거쳐 최후의 3명에게 대표 티켓이 돌아간다. 일본은 랭킹제도 자체가 없는데다 국내 빅 타이틀 일정을 우선시하다 보니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대표 팀을 꾸린다.


농심배의 경우 출전 3개국 중 와일드카드 제도를 가장 잘 활용하는 나라가 한국이다. 선발전을 통해 4명을 뽑고, 주최 측이 나머지 1명을 지명(와일드카드)하는 방식이다. 3회 대회까지는 모든 기사가 출전해 선발전을 치른 뒤 탈락자 중 1명을 주최측이 지명하는 방식이었다. 이것이 4회부터 8회 대회까지 와일드카드는 무조건이창호에게 주는 것으로 바뀌었고, 다시 2006년 8회 대회부터 1~3회 방식으로 환원됐다.

농심배 와일드카드가 한 때 ‘이창호 전용(專用)’이었던 것은 형평성에서 일단 문제가 있었지만 대다수 팬들이 수긍했다. 이 대회에서 이창호가 쌓아 온 성적이 눈부실 만큼 혁혁했기 때문이었다. 4~7회 대회 농심배 와일드카드 임자를 이창호 몫으로 고정시킬 당시 내세웠던 명분도“어차피 이창호는 5명 안에 뽑힐 텐데 그 과정에서 뛰어난 대표 후보 1명을 희생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창호의 상품성, 특히 농심배서의 공헌에 대한 배려 등도 참작했을 것이다.

전성기 때의 이창호가 용명을 떨쳤던 국제 기전은 한 두 개가 아니지만, 그 중에서도 농심배는 그의 신화(神話)가 켜켜이 쌓인 텃밭이었다. 그는 초기 13년 동안 이 대회에 개근하면서 통산 19승 3패, 승률 86.4%를 기록했다. 9회 대회 한 차례를 제외하면 매번 난도(難度)가 가장 높은 주장전에 출전해 얻은 기록이어서 그 가치가 더욱 크다. 6회 때의 막판 5연승, 11회 때는 3연승으로 기적같은 대역전극을 이끌어냈다. ‘농심배 수호신’이란 그의 별명은 결코 과하지 않았다.


하지만 특정기사의 와일드카드 독식은 엄밀하게는 불평등 규정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이 문제와 관련해 대놓고 반기(反旗)를 드는 기사가 있었으니 바로 이세돌이다. 그는 5회 대회(2003년) 예선 개막일을 보름 앞두고 농심배 불참을 선언했다. 2003년이라면 이세돌이 LG배에서 이창호를 누르고 우승하는 등 1차 전성기에 해당하는 시기다. 이세돌의 입장에서 보자면 충분히 이의를 제기할 만 한 상황이었다.

일이 공교롭게 되느라고 이세돌과 농심배의 관계는 악연이라고 할 만큼 이후에도 꾸준히 계속됐다. 1~4회 예선 탈락, 5회 불참, 6~9회 불참, 11회 불참(휴직), 13회 예선 탈락, 14~16회 고사(固辭). 막판 3년은 기회가 주어졌으나 본인이 사양하는 형식으로 동참하지 않았다. 이세돌의 농심배 본 대회 출전은 10회와 12회 딱 두 차례 이뤄졌다. 10회 때 처음 대표 선발전을 통과한 뒤 본선에서 2승으로 주장 이창호를 편히 쉬게 하며 우승으로 이끌었지만, 12회 때는 2연승 후 셰허에게 져 우승컵을 가져오지 못했다.

와일드카드 역사에서 가장 성공적인 연대(連帶)를 꼽는다면 이창호와 농심배, 가장 어긋난 관계는 이세돌과 농심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이, 이 두 개의 상반된 사례가 농심배의 흥행과 관심에 똑같이 플러스 쪽으로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다. 이창호는 이창호대로, 이세돌은 이세돌대로 농심배가 유명해지고 주목도를 높이는데 기여했기 때문이다. 역대 농심배 와일드카드 명단과 성적을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역대 농심배 와일드카드 명단

회(연도)

기사

본선 순번

본선

승-패

비고

1회(99)

유창혁

4번

0-1

중국 위빈에 패

2회(00)

조훈현

4번

2-1

일본 가토에 패

3회(01)

유창혁

3번

1-1

가토에 승, 위빈에 패

4회(02)

이창호

주장

2-0

우승 결정

5회(03)

이창호

주장

2-0

우승 결정

6회(04)

이창호

주장

5-0

우승 결정

7회(05)

이창호

주장

0-1

최종전만 나가 패. 일본 우승

8회(06)

조훈현

1번

0-1

일본 하네에 패

9회(07)

이창호

4번

0-1

창하오에 패. 중국 우승

10회(08)

이창호

주장

0-0

4번 이세돌이 끝냄

11회(09)

이창호

주장

3-0

우승 결정

12회(10)

이창호

주장

0-0

4번 최철한이 끝냄

13회(11)

이창호

주장

0-1

최종전만 나가 패. 중국 우승

14회(12)

박정환

주장

2-0

우승 결정

15회(13)

최철한

3번

0-1

천야오예에 패. 중국 우승

16회(14)

김지석

?

?



19회를 마친 삼성화재배도 와일드카드의 역사가 길다. 1996년 원년 대회 때부터 한 해도 거르지 않았다. 다만 농심배가 한국 출전자 중 1명에 국한한 데 반해 삼성화재배의 와일드카드는 국적이나 소속 기원에 구애되지 않고 선발했다. 올해 19회 대회까지 이 방식에 따라 본선 무대를 밟았던 기사 수는 22명. 대회 역사보다 와일드카드 숫자가 더 많은 것은 초창기 3년 간 복수(複數)로 선정했기 때문이다. 22명의 소속 기원별 분포를 분석하면 한국이 9명으로 가장 많고 중국(7명)과 일본(6명)이 뒤따르고 있다. 이창호와 녜웨이핑(聶衛平) 두 사람은 두 차례에 걸쳐 뽑혔다.

삼성화재배 와일드카드는 당대(當代)의 최고수급이 아니더라도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옛 원로들을 상당수‘모셨다‘는 게 특징이다. 농심배처럼 단 5명이 나와 국가대항 단체전으로 겨루는 농심배로선 취하기 힘든 제도다. 한국의 조남철 김인, 일본 후지사와(藤澤秀行) 린하이펑(林海峰) 다케미야(武宮正樹), 중국의 천주더(陳祖德) 왕루난(王汝南) 등의 원로들이 젊은 고수들과 함께 어울려 겨루는 기회를 꾸준히 마련했다. 좋은 전통이라고 칭찬할 만하다. 그러나 2009년 제14회 대회부터는 와일드카드 대상을 역대 우승자로 제한하면서 ’질적 향상‘을 도모했다.


삼성화재배 와일드카드 출전자들의 성적 스펙트럼은 1회전 탈락부터 우승까지 다양하다. 8회 대회 때 일본 대표로 출전한 조치훈이 우승, 4회 때 역시 일본을 대표해 나온 조선진이 준우승했다. 4강(서봉수), 8강(루이나이웨이)도 배출했다. 32강, 16강, 8강, 4강, 준우승, 우승이 빠짐없이 나왔다. 22명의 총 전적은 23승 28패. 45.1%의 승률이다. 22명 중 1승도 못 올리고 탈락한 기사가 꼭 절반인 11명에 이른다(14회 대회부터 예선 32강전에 더블 일리미네이션 방식을 도입, 1승자도 탈락함). 역대 삼성화재배 와일드카드 출전자들의 성적 명세는 별표와 같다.



◇삼성화재배 역대 와일드카드 명단 (
D.E는 더블 일리미네이션)

회(연도)

기사(소속)

본선 성적

비고

1회(96)

김인(한)

32강

1회전 위빈에 패

린하이펑(중)

16강

최규병에 승, 유창혁에 패

2회(97)

천주더(중)

16강

최규병에 승, 유창혁에 패

홍태선(한)

32강

고바야시 사토루에 패

3회(98)

조남철(한)

32강

위빈에 패

후지사와(일)

32강

안조영에 패

4회(99)

조선진(일)

준우승

조대원 김만수 왕레이 히코사카에 승, 이창호에 패

5회(00)

왕루난(중)

32강

서봉수에 패

6회(01)

예내위(한)

8강

조치훈 야마다에 승, 창하오에 패

7회(02)

다케미야(일)

32강

왕레이에 패

8회(03)

조치훈(일)

우승

김주호 원성진 조훈현 후야오위 박영훈 꺾고 우승

9회(04)

녜웨이핑(중)

32강

송태곤에 패

10회(05)

요다(일)

16강

김지석에 승, 이세돌에 패

11회(06)

서봉수(한)

4강

장웨이 천야오예 왕야오에 승, 창하오에 패

12회(07)

마샤오춘(중)

32강

한상훈에 패

13회(08)

고바야시(일)

32강

장리에 패

14회(09)

조훈현(한)

32강

D.E 2패 탈락

15회(10)

유창혁(한)

32강

D.E 1승 2패 탈락

16회(11)

이창호(한)

16강

D.E 2승 1패

17회(12)

녜웨이핑(중)

32강

D.E 2패로 탈락

18회(13)

창하오(중)

32강

D.E 1승 2패로 탈락

19회(14)

이창호(한)

32강

D.E 1승 2패로 탈락


국제 개인전 가운데 와일드카드 제도를 운용한 개인전으론 이밖에 비씨카드배와 여성 전용 정관장배가 있었다. 두 대회 모두 지금은 문을 닫았다. 비씨카드배는 4회까지 치러졌는데 매 대회 마다 2명의 와일드카드를 지명했다. 2009년 제1회 때는 조훈현과 원성진이 선정됐는데, 조훈현은 파죽의 4연승으로 쳐 올라가다 구리(古力)와의 준결승서 반 집을 패하는 바람에 4강에 그쳤다. 원성진은 2연승 후 16강전서 이세돌을 만나 짐을 쌌다.


2회 대회는 이세돌을 위한 대회였다. 기사직 휴직에서 돌아온 직후 와일드카드를 받은 이세돌은 배려에 보답이라도 하듯 우승하며 2회 비씨카드배를 품에 안았다. 준결승까지 5연승, 그리고 창하오와의 결승 3번기 전승으로 합계 8승 무패의 무결점 우승이었다. 함께 와일드카드로 뽑힌 조훈현은 1승을 거두고 32강에 머물렀다. 2011년 제3회 비씨카드배에선 유창혁과 이창호 2명의 와일드카드가 똑같이 1승, 32강으로 대회를 마쳤다.

마지막이 된 4회 때는 98년생 이동훈과 96년생 최정에게 본선행 ‘무임승차권’을 주는 파격을 택했으나 결과는 둘 모두 첫 판서 패해 탈락하는 것으로 끝났다. 결과적으로 4년간의 비씨카드배 와일드카드 총 전적은 출전기사 7명이 17승 7패를 기록하는 것으로 끝났다. 70.9%로 낮지 않은 승률이다. 하지만 8전 전승을 올린 이세돌 혼자 끌어올린 느낌이 강해 성공적인 와일드카드를 운영한 대회였다고 평가하기엔 주저하게 된다. 중국 주최의 제1회 몽백합배(2013년)에선 쿵제가 2승 1패로 16강까지 갔고, 이창호는 64강에 그쳤다.

여성 국제대회인 정관장배는 1~2회를 개인전으로 치르다가 3회부터 농심배 방식과 똑같은 단체전으로 전환했다. 별표에서 보듯 박지은과 이민진이 와일드카드를 양분했고 대회성적도 좌지우지했다. 와일드카드 없이 팀을 꾸렸던 8회 대회를 제외한 6년간 와일드카드 선수들은 총 8승 4패(승률 66.7%)를 마크했다. 한국이 거둔 네 차례의 우승 중 와일드카드 지명기사가 결정지은 것은 2번, 와일드카드 출신이 중국의 우승을 막지 못하고 물러선 경우는 3번이었다.



◇정관장배 역대 와일드카드 명단

회(연도)

기사

본선 순번

본선

승패

비고

3회(05)

윤영선

4번

2-1

중국 우승

박지은

주장

2-1

4회(06)

박지은

주장

2-1

중국 우승

5회(07)

박지은

4번

0-1

주장 이민진 5연승, 한국 우승

6회(08)

이민진

4번

3-0

한국우승 결정(주장 박지은 부전)

7회(09)

이민진

주장

0-1

중국 우승

8회(10)

없음

없음

없음

주장 박지은 4승으로 한국 우승

9회(11)

박지은

주장

1-0

한국우승 결정(최종전 루이 제압)


끝으로 국내 대회인 지지옥션배 와일드카드 현황을 살펴본다. 여류 대 시니어 연승대항전인 이 대회는 8년 간 양팀 나란히 4승 4패의 팽팽한 접전이 전개되고 있다. 승수 합계도 시니어 팀이 여성 팀에게 85승 84패로 단 1승이 앞섰을 뿐이다. 이 대회도 해마다 남녀 1명씩의 와일드카드 제도를 운용하고 있는데, 8년 간 와일드카드 합계 성적은 시니어(10승 8패)가 여성(2승 6패)에 비해 월등하다. 지지옥션배 8년간 최고의 ‘히트 상품’은 2기 때 5승 1패로 팀 우승의 밑거름이 된 차민수였다. 반면 우승 결정의 수훈을 세운 와일드카드 기사는 여성 팀에서만 딱 1명 나왔는데, 바로 1기 우승 당시 주장 박지은이었다.


◇지지옥션배 와일드카드 전적

시니어(승-패)

여성(승-패)

1기(2007)

이홍렬(1-1)

박지은(1-0)

2기(2008)

차민수(5-1)

이슬아(0-1)

3기(2009)

차민수(1-1)

이민진(1-1)

4기(2010)

강 훈(0-1)

최 정(0-1)

5기(2011)

차민수(0-1)

박지연(0-1)

6기(2012)

서능욱(3-1)

하호정(0-1)

7기(2013)

양상국(0-1)

조혜연(0-1)

8기(2014)

박상돈(0-1)

오유진(부전)


이상에서 살펴보았듯 바둑에서도 와일드카드의 효용가치는 다양하다. 대회를 빛낼 우수한 기사, 아깝게 탈락한 선수, 대회의 권위와 포용력을 높여줄 존재를 확보하는 수단으로 매우 효과적이다. 특별히 많거나 적은 나이, 성별, 경력 등 특수 신분을 확보하는 것은 흥행 제고에 큰 도움이 된다. 최근의 지지옥션배는 매년 양 팀의 전력을 최대한 대등하게 만드는 수단으로 와일드카드를 절묘하게 운용하고 있다는 느낌도 준다.


6회 농심배 때 역전 만루 홈런(5연승)을 날린 이창호, 8회 삼성화재배 때 7승(1패) 의 화려한 전적으로 우승한‘초대 손님’조치훈, 6개월여의 기나긴 기사생활 칩거를 떨치고 홀연 나타나 8연승으로 제2회 비씨카드배에 입을 맞춘 이세돌이 모두 와일드카드였다. 한국기원과 주최사가 마주 앉아 좀 더 풍부한 상상력으로 와일드카드를 기획한다면 영웅들의 신화(神話)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바둑계도 풍성해질 것이다. 16회 농심배 와일드카드 김지석이 연출하는 대 반전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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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오늘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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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인 2015/04/05(01:23)
칼럼이 중후해서 고생하신 흔적이 큽니다.....
선바람56 2015/03/12(15:10)
이창호 국수의 반전을 기대해 봅니다 아직 나이가 창창한데..
메탈기어 2015/03/04(13:48)
재미있게 읽었네요^^
홍짱홍짱 2015/03/03(13:06)
호오 이렇게 자료 준비하고 흥미 진진한 칼럼에 댓글이 없다니요.. 너무 잼있게 읽었습니다. 좋은 칼럼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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