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석의 발전사(1) 소목과 외목의 행로

I. 포석의 세계 - 중세 일본이 도달한 신세계

중세 일본이 도달한 세계는 포석의 세계였다.

새로운 포석의 세계였다.

그 이전 중국에서는 비록 바둑을 두었으나 그건 제한된 세계였다. 포석이라고는 없는 세계였다. 사전배석(事前配石)이라는 말 그대로 포석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그 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세상이었다.

반론은 있다.

두칸벌림은 포석 아니냐?

날일자 걸침은 포석으로 들어가는 길 아니냐?

아니다. 그것은 포석이라고 할 수 없다.

중국의 경우 포석은 흑백이 엇갈려 돌 두 개씩을 화점자리에 놓았을 때 이미 끝난 것이다. 이후엔 주어진 착상만을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랬다. 착상은 주어졌고, 주어진 것만이 착상이었다.

II. 소목과 외목 - 눈금의 세계

중세 일본이 도달한 세계는 소목과 외목으로 특징 지워지는 세계였다.

아무 곳도 없는 텅 빈 세상에서 중세 일본이 세운 이정표는 소목과 외목이었다.

소목을 보라. 외목을 보라. 그러면 바둑이 보일 것이다.

소목을 두라. 외목을 두라. 그러면 바둑 두는 길이 보일 것이다.
 

물론 그 동안 강조했던 것으로, 중세 일본도 중국의 관념 중 하나인 변을 중시하는 태도를 여전히 지니고 있었다.

비록 화점을 제거했지만, 그래서 귀를 환하게 비워두었지만, 그러나 당장 그 귀를 잘 다루는 것은 버거운 일이었다. 바둑은 전쟁터. 싸워야 한다. 바로 그것이다.

바둑에서 버릴 수 없는 관념 하나는, 전쟁, 바로 그 관념이었다.

1도(난가도 - 포석은 없다)

난가(爛柯), 바둑을 이르는 언어.

도끼는 썩어도 천년을 가나. 인생, 백년도 채우지 못하는데.

가장 오래된 12세기 바둑책인 「망우청락집」에 나오는 대국보다.

흑2가 진신두라 불리는 바로 그 정석의 첫 수. 중국 바둑의 원형이다.

누르는 것. 그것이 중국 바둑이다.

흑6도 우리의 상식으론 이해가 되지 않는다. 백19 이하는 알파벳 순서인데, 싸움은 있되 포석은 없다.

2도(승려 산샤의 실력 - 포석은 없다)

혼인보(本因坊) 원조(元祖) 산샤(算砂 1559-1623)가 둔 바둑이다(흑: 鹿塩利賢).

바로 바로 걸쳐가는 그 점을 먼저 주의하자.

백16 백18은 우리가 생각하는 삭감이 아니다. 싸움을 걸어가는 수법이다.

우하귀 흑7 흑9의 수법도 역시 포석보다는 싸움이 먼저라는 관념을 뒷받침하는 수법이다.

3도(빈 귀에 불문 - 중국의 힘바둑 여전)

일본 바둑 초기의 대국이다.

우변 백16 흑17을 눈여겨보자. 중국의 힘바둑이 여전히 강함을 알 수 있다.

그건 우하귀 백2 이하 백6까지의 접전만 보아도 뚜렷하다. 싸움이 포석보다 앞서고 변이 중시되는 경향을 알 수 있다.(17세기 초. 백 中村道碩 흑 安井算哲)

4도(노사초 말년 한 때, 역시 귀는 뒷전)

흥미로운 자료는, 20세기 초 한국 순장바둑 국수들이 자유포석제 아래에서 둔 바둑이다.

빈 귀를 남기고 싸움을 걸고 또 변을 중시하는 기풍이 엿보인다.

바둑이란 어떤 것일까.

여기 이 글은 싸움과 변, 그 두 관념을 너무나 가볍게 여기고 있는 걸까. 그런 실수 지금 하고 있는 걸까.(백 권병국 흑 노사초)

돌아본다.

小目. 外目.

목(目)이라는 글자. 그 글자를 돌아본다.

목(目)은 눈금이라는 의미이다. 일본에서는 그리 읽는다. 눈으로 금을 긋는 것인가. 그래서 눈 목(目) 자(字)를 쓰는가.

참고로 다음 용법이 있다. 두 눈 나면 산다. 모눈종이를 떠올리면 이해된다.

이런 표현 있다. 천하사목(天下四目).

돌 4개를 반상에 깔면 천하에 누가 나를 이기랴. 그런 자부가 들어간 표현.

그래서 19세기 유명한 내기꾼인 시미야(四宮米藏)는 자신을 천하이목(天下二目)으로 불렀다. 뒷날의 명인 죠와(丈和)를 죠와 6단 시절에 만나 두점으로 4승 6패 1빅을 올려 그 자부가 약간 무너졌지만 말이다.

그럴 때 목(目)은 화점을 이른 것이겠다.

그러면 분명하다.

외목은 화점의 외곽으로 한 눈금 떨어진 자리.

소목은 한 눈금 아래 자리.

고목은 외목보다 높으니 고목.

반상은 눈금으로 이해되는, 빈틈없이 정연한 세계였던 것이다.

질서를 불러일으키는, 그런 질서에의 충동을 요청하는, 정(井)자(字) 시스템으로 질서를 불러오는 그런 세상이었다.

반상은 눈금으로 비교되는 세상이었다.

그 결과 집으로 비교하는 기준은 당연히 얻어진다.

그랬다. 소목과 외목으로 대표되는 귀의 착점은, 귀를 중심으로 세상을 구획하려는 노력을 불러일으킨다.

출발은 귀(隅)다. 그건 중국의 사전배석제가 가졌던 동서남북의 관념과 다름이 없이 대지에 주어지는 관념이다. 그건 어색하지 않다. 텅 빈 대지에서 그나마도 없다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텅 빈 대지.

그 당혹스런 현실.

중국의 접바둑에서도 화점이 주어지지 않은 공간에 첫수를 어디에 두어야 할지 당황해했다. 그래서 먼저 걸치기도 했다.

III. 질서 뒤에는 숨겨진 질서가 필요하다

타부(taboo). 금기시된 존재. 그것이 타부다.
 

그러나 타부는 사실 질서 그 자체에 다름 아니다.

누군가 고마운 마음으로 당신의 책상을 정돈해주었다. 마음 편하신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곧 다시 책상을 정돈할 것이다. 자신만의 공간적 질서가 있다.

반상에서도 바둑공동체에서도 그런 것이 있다.

중세 일본에서는 3三과 화점이 그 역할을 해주었다.

반상의 질서가 소목과 외목을 중심으로 세워질 때, 3三과 화점은 세워질 수 없는 현실을 암시적으로 대변했다. 화점과 3三은 좋지 않은 수법의 대명사였다.

화점은 4선에 자리 잡고 있어 불안한 현실을 알려주었고, 3三은 변에서 너무나 멀기에 발전성이 약했다.

둘 다 피해야할 대상이었다.

피해야할 대상은 의식에서 사라진다. 금기시된다. 타부가 된다.

3三이 타부가 되고 화점도 밀려났을 때, 의식의 감촉에 잡히지 않는 존재가 되었을 때,

소목과 외목은 반상을 질서 짓는데 그 중심적 역할을 다하였다.

5도(소목과 외목은 서로의 거울이다)

바둑은 착수교대가 지배하는 놀이.

다행히 반상에 귀와 변은 짝수로 주어진다. 따라서 상대가 걸친다고 즉각 대응할 필요는 없다.

불과 몇 수만 지나면 걸침과 선점의 구별은 사라진다. 수순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자신의 위치만 알게 된다. 소목은 상대의 외목을 전제하고 외목은 상대의 소목을 전제하게 된다. 소목을 잘 활용하려면 외목을 잘 알아야 한다. 외목을 잘 알려면 소목을 잘 알아야 한다.

소목과 외목의 결별

재밌는 사실 하나는, 많은 운명이 그러하듯이 소목과 외목의 운명도 자기 부정적인 변증법의 과정을 거쳤다는 것이다.

도샤쿠는 세칸협공을 발견하면서 반상이 19줄인 것을 확인시켰다.

세칸협공.

역사적 사건이다.

세칸협공은 역사적인 사건이다.

그가 애용한 것은 외목.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외목은 그의 발견 때문에 뒤로 밀려날 운명에 처했다.

세칸협공이 소목에는 유리하지만 외목에는 불리한 방향으로 영향을 미친 것이다.

6도(외목은 세칸협공 당할 자리에 있다)

상변은 도샤쿠의 생애 자랑의 1국이던 춘찌(春知)와의 2점 바둑. 그 상변 그대로다.

하변은 돌의 위치를 달리 했다.

문제의 초점은 다음과 같다.

백3은 벌림과 협공을 겸한 자리. 세칸협공일 때 그 효율은 극대화된다.

그러나 조건을 하나 바꾼 하변을 보자. 하변은 흑돌이 외목이 아니라 소목에 있다.

백이 상변과 같은 벌림을 하면, 그 때 백3은 협공의 위치를 상실한다. 흑에게는 A 벌림의 여유가 있다.

7도(소목은 외목에 비해 근거 확보에 유리)

이 그림이 매우 자의적인 것 아닌가 할 수도 있을 듯하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가장 기본적인 수법 하나에서 차이가 분명하다면, 그건 진술적 명제 하나와 다를 바 없는 힘을 발휘한다. 반상에서 “기본적인 수법”은 그 활용범위가 넓기 때문이다. 즉, 일반화의 여지가 높은 것이다.

상변과 하변의 차이는 분명하다. 상변은 백의 반발 가능성이 높은 데 비해 하변은 그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근거를 그 자리에서 확보하려고 할 경우에.

8도(마늘모 발견으로 소목이 더욱 강조되다)

소목이 강조되니까 귀가 중시되고 변이 저평가 받게 되었다.

변이 저평가 되니까 외목과 고목의 가치가 줄어들었다.

이 바둑은 하나의 가설적인 그림인데, 굳이 가까운 전거를 들자면 1835년의 토혈지국(吐血之局)이다. 백2 이후 흑A 백B, 그렇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그 수순은 제쳐두자.

백3 마늘모는 소목에서 특히 그 가치가 있는 것이다. 적어도 20세기 초까지 그랬다.

그런데 백3은 반상 전체를 굽어보는 힘을 간직하고 있는 것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하변, 우변, 그리고 우하귀에 미치는 영향이 압도적이다.

이는 외목이 대신해 줄 수 없는 현상으로, 소목이 외목보다 널리 쓰이게 되는 현실적인 원인임이 분명하다.

변의 힘은 귀의 변화에 달린 것이다.

그 점이 확인된 것이다.

수샤쿠 포석을 포석이론의 정점이라는 것이 널리 받아들여지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음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

변에서 귀로, 외목에서 소목으로 무게 중심이 바뀌다

그랬다.

변에서 귀로 무게 중심이 바뀌게 된 것과 소목이 외목보다 훨씬 많이 쓰이게 된 시기가 비슷하다.

아마 그 순서는 바꾸어야 할 것이다.

외목보다 소목이 더 많이 사용하는 과정에서 변을 중시하는 사고방식은 점차 실전에서 사라지게 되었을 것이다.

귀를 중시하는 사고방식이 점차 힘을 얻었다. 반상의 주인이 되었다.

9도(마늘모는 귀의 가치를 증거한다)

8도, 10도와 비교하라. 흑3을 A 두지 않은 이유가 그에 있다.

백4 갈라침을 당해도 여전히 흑은 선착의 효가 살아있는데, 이후 알파벳 순서로 따라가 보라. 전체적으로 튼실하다.(1852년 連碁. 백 8단 秀和 5단 鶴岡 흑 7단 水策 7단 伊藤)

10도(일방적인 변 강조, 변의 약화 암시)

흑1은 일방적으로 변이 중요하다고 강변하는 수, 그리 읽힌다. 지금의 안목으로는.

당시에도 도샤쿠는 그리 읽었다. 그래서 흑3 이후는 알파벳 순서로 흑을 가볍게 눌러 제한하는 것으로 만족하였다.(1670년. 백 本因坊 道策 흑 安井算哲)

11도(전국적 안목 없인 마늘모 가치 없다)

마늘모가 마늘모 되기 위해서는 전국적인 안목이 필요했다.

전국적인 안목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변과 귀의 가치를 판별할 수 있는 이론을 요구한다.

변과 귀의 유기적인 관계를 다룰 수 있어야 한다.

이 바둑에서 우상 흑17은 마늘모다.

그러나 백18이 놓여지니 어떤가. 우선 우변과 우하의 넓음이 눈에 들어온다. 그 점을 간과한 것이다.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앞서 9도에서 보았던 그 마늘모와는 안목이 다르다는 것이다.

상변도 좌변도 하변도 두칸씩 벌려서 변을 강조했는데 강조와 효과적인 운영은 다른 것. 변은 그 변을 효과적으로 이해할 때에야 제대로 강조되는 것이다. 여기서 상변은 이미 흑이 두칸 벌려서 안정적인 곳이라는 점도 강조하자.(1647년. 백 本因坊 算悅 흑 安井算知)

12도(외목은 소목의 견제로서 가치 남다)

흑1과 백2를 주목하자. 흑1 다음 흑3 굳힘이 오면 더욱 더 확연해지는 백2의 가치.

흑은 걸친다면 여기 흑5밖에 없다 A는 백5로 눌려 굳힘 가치가 떨어진다. 흑5 다음 실전은 알파벳 순서. 백을 잡은 슈와가 화점을 실험한 대국이다. (1838년. 백 土屋秀和 흑 安井算知)

소목은 슈사쿠 포석의 마늘모, 그 가치에서 역사의 정점에 달했다.

소목 바둑의 정당성을 확인한 수법이었다.

그렇지만 백을 잡은 상대는 입장이 달랐다.

소목의 가치를 상대적으로 다루는 수법, 즉 4선, 한 수로 귀를 점하는 것, 외목의 조건을 멀리하는 것 등, 그런 점을 갖춘 착수는 없을까?

그로부터 화점이 떠올랐다.

19세기에는 중국의 사전배석제에 대한 무의식적 부담도 사라졌다.

벌써 일본 스스로의 바둑을 실험한지 250년이 훨씬 넘었다.

화점을 다시 끌어들여도 중국에 대한 심리적인 부담은 없다.

이제 화점은 일본의 의식 속에서 실험할 준비를 갖추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