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자를 사이에 두고 사람들이 둘러서 있다. 그 가운데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저 사범님이 누구였지?’

‘옆엔 신영이잖아!’

신영이가 스튜디오에 들어서는 나를 발견하고 총총 다가온다.

“언니!”

이미 얘기가 돌았는지, 그닥 놀라는 표정은 아니다.

“너가 복기맨을 한다고?”

“어? 여긴 웬일이야?”

보통의 반응은 이렇다. 난 프로고, 프로가 복기맨을 하는 경우는 드무니까. 다들 물고기 표정이 돼 버린다.


오늘은 덕영배 녹화. 바둑판을 사이에 두고 복기맨 둘이 마주 앉아 있다. 고개를 약간 돌리면 자석 바둑판을 사이에 두고 역시 진행자와 해설자가 나란히 서있다.

상대 복기맨에게 물었다.

“저 사범님은 누구세요?”

“박창규 사범님요”

아, 저 사범님이 박창규 사범님이구나.


“무슨 말 해야 돼요?”

해설이 처음인 신영이는 긴장의 표정이 역력하다.

“대구 경북 지역의…” “대구 경북 지역의…” “대구 경북 지역의…”

신영이의 발음이 자꾸만 꼬인다.

몇 번의 리허설을 거쳐 녹화가 시작되고, 모두의 우려와 달리 신영이는 잘 해내고 있다.

“처음엔 버벅대다가도 막상 판으로 들어가면 얼마큼은 한다”

프로기사의 신기한 면모에 대한 PD님의 평이었다. 당연한지도 모른다. 그들은 바둑 수를 고민하고 설명하는데 오랜 시간을 들여왔으니까 말이다.

문제는 나다. 두 판의 대국에서 실수를 하고 말았다. 주니어부 결승 판에서 105수를 둬 버렸고, 시니어부 결승 판에서 43을 둘뻔했다. 미리 104수까지, 42수까지 두고 멈추기로 제작진과 약속해 놓은 부분이다.

“바로!”

헤드폰 너머의 ‘바로’는 바로 두라는 말이 아니라, 바로 광고 나가겠다는 소리였다.

“세실 사범님~ 얘기 드렸잖아요~

헤드폰 너머로 PD님의 질책이 가해진다. 이쿵. 또 혼났다.  

주니어부 결승에 홍무진 선수가 승리했고, 시니어부 결승에 김정우 선수가 승리했다. 통합 결승전은 홍무진 선수와 김정우 선수의 대결. 신영이는 점점 더 좋아진다. 처음의 울 것 같던 눈망울도 조금은 초롱초롱해졌다.

대회에서 입상하면 몇 점씩이 쌓이고, 총 100점이 쌓이면 입단을 하는 ‘포인트입단제도’가 생겼단다. 홍무진 선수는 현재 90점을 적립해 입단이 유력한 선수라고. 문득 의문이 생긴다. 김정우 선수는 나이도 있고 입단권도 아니다. 그에 반해 홍무진 선수는 나이도 어리고 입단권이다. 만약 내가 김정우 선수라면 어떨까? ‘이 바둑, 꼭 이겨야 되나?’ 난 그런 생각이 들 것 같은데 말이다.

 

실전실행1 을 보자. 좌변 백 진영을 줄이기 위해 흑1로 날일자 했다. 그러자 백은 마늘모로 수를 물어본다. 흑도 봉쇄를 당할 순 없으니 한 칸을 뛰어 나간다. 백은 4로 눌러 귀 모양이 정리되길 기다린다. 그러나 흑은 5로 돌변. 백의 다음 수가 난감하다. 좌중앙 2,3 교환의 능률을 살리기도 1,4의 교환을 이득으로 이끌어 가기도 모두 난감하다. 차라리 백4로 A에 막아 Δ를 가볍게 처리할걸,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 의기소침하게 백6으로 지킨다. 그러자 흑은 기다렸다는 듯이 7로 침입.  

  

실전실행2. 이하 15까지 백 진영이 흑에게 돌파됐다. 이후 사십여 수를 더 진행하다 김정우 선수는 돌을 거둔다. 모니터엔 대국 직후 악수를 나누는 두 선수의 모습이 조명된다. 홍무진 선수의 손을 두 손으로 꼬옥 잡아 흔드는 김정우 선수의 표정에선 패자의 고통이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에 반해 홍무진 선수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한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 우승이다.

“내년에도 우승할 건가요?”

기자가 묻는다.

“내년엔 입단해야죠”

홍무진 선수의 대답이다. 그 맑은 웃음에 어린 포부가 실현되길 조용히 바라 본다.